임현정 "'베토벤'이란 숙제끝내고 '오락 프로그램'에 도전"
내달 2년만에 피아노 독주회…"2천 관객들의 4천시간을 아름답게"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제게 베토벤과 바흐는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였고, 저를 건강하게 하고 튼튼하게 하는 '웰빙 음식' 같은 존재였어요. 그러나 슈만과 라벨 등으로 구성된 이번 프로그램은 제게 숙제를 다 한 뒤에 하고 싶었던 '오락' 같은 것이고, '군것질' 같은 곡들이에요."
'유튜브 스타', '미국 빌보드 클래식차트 1위' 등의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피아니스트 임현정(31)이 2년 만에 "아끼고 아껴왔던 곡들로" 2년 만의 고국 무대에 오른다.
25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난 임현정은 "외국에서만 활동하다 보니 가족들이 지켜보는 한국에서의 무대는 늘 꿈같은 일"이라며 "그래서 무대에 오르면 늘 눈물이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국내에서 유명 교수를 사사하고, 국내외 콩쿠르를 도전하며 인지도를 쌓아나가는 보통의 클래식 연주자와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열세 살에 홀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 그는 열일곱에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최연소 입학, 3년 만에 수석 졸업장을 땄다.
16세 때 승려가 되고자 출가를 결심하기도 했을 정도로 인간과 영혼의 본질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 그가 처음 대중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9년 유튜브에 올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연주 동영상.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주를 펼치는 영상이 유명세를 타면서 26만건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튜브에서는 스타였지만 여전히 정통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2012년 세계적 음반사인 EMI클래식과 정식 계약을 맺으면서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그의 데뷔 앨범도 신인으로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이었다.
이 음반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스 클래식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저를 이끌어주는 보이지 않는 별이 있다고 믿어왔다"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은 에너지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지난 10년간 바흐와 베토벤 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는 이들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의무이자 숙제"라고 생각한다.
"수학자, 과학자에게도 덧셈과 뺄셈은 기본이에요. 연주자에겐 베토벤과 바흐 등이 그런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무 살 때 저 자신에게 10년간의 시간을 주면서 이런 숙제들을 해내자고 다짐을 했어요. 그리고 실제 10년이 흐른 지금 그때 계획했던 목표들은 어느 정도 마친 것 같습니다.(웃음)"
'숙제'를 마친 그가 이번 무대에서 선보이는 곡은 슈만의 '사육제', 브람스의 8개의 피아노 소품 Op.76, 라벨의 '거울',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 등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는 친해지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데, 어떤 사람과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금세 잘 맞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 프로그램은 제게 그런 곡들이며 감히 '잘 어울린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곡들"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라벨의 곡에 대해서는 "자연 그 자체의 사운드가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고 브람스나 슈만의 곡에 대해서는 "공주 같은 성격, 괴팍함, 사랑에 빠진 변덕스러움 등 인간적인 모든 감정이 다 들어가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작년 프랑스 유명 출판사인 '알뱅 미셸'(Albin Michel)을 통해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Le Son du Silence)를 출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로 알려진 출판사다.
그는 이러한 에세이를 쓴 이유에 대해 "침묵은 음악의 시작점이자 끝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지가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듯 침묵이 있어야 음악이 존재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시작은 침묵이 전제돼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음악의 마지막도 결국 침묵입니다. 그리고 그 연주회가 어땠는지에 따라 어떤 마지막 침묵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강렬한 것일 때도 있어요."
그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서도 그러한 강렬한 침묵을 청중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단 몇 명이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음악회는 2천명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모여,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을 하고 앉아있는 거예요. 그 자체로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2천명이 두 시간의 연주를 들으러 온다면 저는 4천 시간을 부여받은 셈이에요. 그 4천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일이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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