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TPP '파괴'에 난감한 日, 아시아·유럽에 눈돌린다
日, 美와 FTA "지금 필요없어"…EU와 경제연대협정 조기타결 추진
日, 中주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적극적으로' 입장변화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으로 사실상 제대로 된 협정발효가 어려워진 가운데 일본이 유럽연합(EU)이나 동아시아지역으로 눈을 돌려 경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TPP 탈퇴의사를 분명히 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본에 양국간 경제 교섭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앞에 선 일본은 그간 논의돼온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5일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의 TPP 이탈로 일본 정부가 EU와의 경제연대협정(EPA), 한국·중국·일본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회원국들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의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본으로선 미국이 가장 크고 중요한 시장이기는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다자간 협상이 아닌 양자협상을 중시하면서 일본을 상대로 힘을 바탕으로 경제적 압박을 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유럽이나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려 연대를 강화해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은 그동안 EU와 경제연대협정 체결에 공을 들여왔다. 세계 경제가 불안한 가운데 자동차나 전자제품 강국인 일본으로선 유럽이 해당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판단에서다.
작년 12월 일본은 자국에서 유럽연합과 경제연대협정 체결을 위해 집중 협상을 벌인 데 이어 근래 벨기에에서 추가 협상을 진행했다. 일본은 당초 작년말 '큰틀에서의 합의'를 노렸지만 실패했으며, 최근의 재논의에서도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일본측은 EU에 자동차, 전자기기에 대한 관세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EU는 유제품, 돼지고기, 목재 등에 대한 관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서로 관세 철폐·인하의 시점과 정도에서 이견이 만만치 않다.
특히 일본과 유럽연합의 이 협상은 올해 상반기 몰린 유럽 각국의 정치 이벤트들을 넘어야 타결 가능성이 있다. 오는 3월 이후 네덜란드 총선거, 프랑스 대통령 선거 등 유럽의 선거가 많다. 일본은 그 전에 조기 합의를 이루려 하지만, 아직 협상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주도의 RCEP에 일본은 그동안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왔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은 그동안 중국 주도의 RCEP를 견제하려고 TPP 추진에 노력해왔으나 이제는 일본으로서도 RCEP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일본은 지난달 미국의 TPP 탈퇴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중국과 차관급 회의를 열고 6년 반 가량 중단됐던 고위급 경제관료 회담을 개최해 RCEP 교섭을 진전시키자고 뜻을 모은 바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TPP 잔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날 참의원 본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TPP의 전략적, 경제적 의의에 대해 침착하게 이해시키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정부가 조만간 제안할 것으로 보이는 미일 FTA를 그다지 반기지 않고 있다.
미국이 대규모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이 뻔한 만큼 일본의 이익을 일정 수준 보장할 만큼의 협상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두 나라 사이의 (무역) 교섭에 들어가면 TPP에서 합의했던 것 이상 수준의 농산품 시장 개방 압력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환율 정책 문제 등을 의제로 가지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미국의 시장을 노리고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를 요구하려 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잇따라 일본 자동차 업계를 실명으로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측의 주장이 미국측에 먹혀들기 쉽지 않아보인다.
일본 내각부의 한 간부는 이 신문에 "지금 뭐라 해도 미국과 일본 사이에 FTA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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