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토슈즈 벗고 새 반세기 시작…또다른 나 배우고 있어요"
국립발레단장 연임에 성공…"향후 3년보단 오늘에 집중할것"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항상 깨어있어야 하니까 커피를 정말 많이 마셨는데 요즘에는 될 수 있으면 따뜻한 차를 마시려 하고 있어요. 잠도 하루에 7시간은 자보려 하고 있어요. 정말 처음으로 이렇게 자봤어요. 제게는 어마어마한 변화죠."
최근 국립발레단 단장 연임에 성공한 강수진(50)은 발레리나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의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것에 "즐겁게 적응하고 있다"며 웃었다.
사실 그가 지난 2014년 2월 국립발레단 수장을 맡게 됐을 때 무용계에서는 한국 발레에 새 전기를 마련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 동시에 행정 경험이 전무한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지난 3년간 국립발레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정통 클래식 발레에 치중돼 있던 국립발레단 레퍼토리를 네오클래식과 모던 발레 등으로 넓혔으며 단원들이 직접 안무한 소품들을 공연하는 '신인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반 '강수진'이란 타이틀에 더 관심 두던 관객들도 다시 '국립발레단' 자체에 집중했다. 작년 국립발레단 전체 공연의 객석점유율은 88.7%(유료 관객점유율 68%)에 달한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단장실에서 만난 그는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보낸 지난 3년간에 대해 "배움의 연속이었고 업앤드다운(up&down)도 있었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처음 취임했을 때부터 클래식부터 현대작품까지 다 소화할 수 있는 '21세기형 발레단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단원들이 잘 따라와 줬어요. 제가 한국에 온 목적은 너무도 명료하고 간단해요. 무용수를 잘 키워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목표했던 쪽으로 발레단이 변화하고 있어 너무도 보람차고 기쁜 마음입니다."
대신 강 단장은 작년 7월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발레 '오네긴'을 마지막으로 30년간의 무용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안정적인 독일에서의 삶 대신 고국에서의 완전한 정착을 택했다.
그는 "남편(툰치 소크만)도 나도 초반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참 많이 고생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며 "원래 후회는 하지 않는 성격이고 후회를 할 거였으면 한국에 오지도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만큼 그는 새로운 역할을 기쁘게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그의 나이도 딱 쉰. 그는 "무용수로서의 반세기를 접고 새 반세기를 시작하는 셈"이라며 웃었다.
다만 30년간 무대에 오롯이 맞춰져 왔던 몸은 최근 이런저런 사인을 보내오고 있다.
"쉬는 것, 잠을 충분히 자는 것 등은 이전의 저와 상관없던 일이었죠. 토슈즈를 벗은 지 6개월밖에 안 되지만 몸은 이전의 밸런스와는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나 봐요. 그래서 잠도 7시간씩 자려고 노력하고 커피도 줄이려고 하고 있어요. 제 몸속의 알람을 조금씩 바꾸고, 보통 사람의 생활을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50년간 모르던 또 다른 나를 배우고 있죠. 물론 아침에 일어나면 몸부터 풀어요. 단 발레를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요. 하하."
늘 '지금, 여기, 오늘'이 가장 중요한 강 단장은 향후 3년간의 거창한 계획보다 올해의 작은 계획으로 머릿속이 가득해 보였다.
올해는 일단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립발레단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오는 11월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화려한 미장센이 펼쳐지는 드라마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올릴 예정이다.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에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이 안무를 입힌 작품으로, 왕정 러시아의 귀부인 '안나 카레니나'와 젊은 장교 '브론스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운 춤으로 펼쳐진다.
그는 "전 세계인이 다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며 "글로벌한 시각에서 봤을 때도 '한국 발레 잘한다'는 이야기를 꼭 듣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요. 발레단과 단원들을 위해 한가지씩 일을 하다 보면 이번 임기 3년도 훌쩍 지나가 있을 겁니다. 우선은 올해를 잘 시작해서 잘 마무리하는 것, 오늘을 잘 시작해서 잘 마무리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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