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하도다, 내 몸이여"…한시에 나타난 선비들의 질병관

입력 2017-01-23 17:59
"가련하도다, 내 몸이여"…한시에 나타난 선비들의 질병관

한국고전번역원 '병중사색' 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글로 쓰지 않고는 말로 소통이 어려우니/ 아내와 자식이라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네/ 외롭게 병이 든 몸은 낱알인 양 보잘것없고/ 기나긴 근심은 천 갈래로 어지럽기만 하네"(권근의 '스스로 위로하다'(自遣) 중)

고려 공민왕 때 태어나 조선에서도 관직을 지낸 권근(1352∼1409)은 귓병에 걸린 뒤 가족과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고충을 토로하면서 "지천명(50세)의 나이 넘었건만 어찌 천명을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옛 선비들은 질병에 걸리면 심경을 담은 시를 쓰곤 했다. 몸속을 파고드는 고통, 병으로 인한 좌절감과 고독감,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이 시의 주제가 됐다.

한국고전번역원이 23일 발간한 신간 '병중사색'(病中思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문인 7명이 병을 앓는 중에 완성한 한시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풀어낸 책이다.

저자인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는 "우리 선조들은 '병의 근원은 무엇인가', '왜 병에 걸렸을까' 등 근원적 문제를 깊이 생각했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인 이규보(1168∼1241)는 시와 거문고와 술을 무척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는 술병에 걸려서 쓴 것들이 꽤 있다.

"앓을 적에도 차마 술을 사양 못 하니/ 죽는 날에야 비로소 술잔을 놓으리/ 맑은 정신으로 살아 있은들 무슨 재미랴/ 취해 살다 죽는 것이 참으로 좋다네"(이규보의 '이튿날 또 짓다'(明日又作))

선비들이 아무리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려고 해도 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려 후기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1328∼1396)은 요통, 치통, 눈병, 다릿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가련하도다, 내 몸이여/ 질병이 항상 몸을 에워싸서/ 칼로 도리는 듯한 고통에 신음하고/ 내장은 마치 기름이 끓는 듯하네"(이색의 '가련하도다'(可憐哉) 중)

조선 중기 학자인 신흠(1566∼1628)은 10살에 '논어'를 암송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으나, 24살에 몸져누울 정도로 큰 병을 앓았다. 이후에도 눈병, 귓병, 종기로 평생을 고생했다.

하지만 그는 눈병 때문에 다른 감각으로 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며 "보는 것은 눈으로 하는 것이지만/ 보게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니"라고 노래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문장가인 서거정, 김종직, 이식의 시가 실렸다. 삽화는 이희중 용인대 회화학과 교수가 그렸고, 감수는 오준호 박사가 했다.

280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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