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돈 특검수사, 역대 최대 10명 구속…"朴대통령만 남았다"
뇌물죄 겨냥 수사 집중…블랙리스트·이대 비리 수사 순항
"무리한 수사·요란한 수사" 지적도…당사자 비협조 '난제'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이영재 송진원 기자 =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는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이 21일로 정식 출범 한 달을 맞았다.
애초 특검법상 명시된 14개 수사 대상을 70일(연장할 경우 최대 100일)이라는 한정된 시한 내에 다 들여다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었지만, 막상 수사가 시작되자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의혹을 파고들어 적지 않은성과를 냈다.
21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한 달간 특검에서 구속된 인사만 10명에 달한다. 역대 11번의 특검 수사가 있었지만, 구속자가 이처럼 많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출범 초기에 '반짝 성과'를 내다가 종국에 흐지부지돼 '무용론'에 시달린 과거 특검과 다른 모습이다.
검찰 출신 박충근·이용복·양재식 특검보와 판사 출신 이규철 특검보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실무진 구성에서 검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특수통 강골' 윤석열 수사팀장과 기획·특수수사에 모두 능한 '테크니션' 한동훈 부장검사 등 구성원 면면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의혹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수사가 '8부 능선'을 넘어 모든 의혹의 정점이자 중심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는 양상이다.
특검 수사는 ▲ 박 대통령 뇌물죄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 청와대 비선진료 ▲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 등 네 갈래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 朴대통령 뇌물죄 규명에 사활…"성패 좌우" 관측
박 대통령 뇌물죄 의혹은 특검이 사활을 거는 부분이다. 특검 수사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검이 작년 12월 21일 현판식과 동시에 보건복지부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등의 압수수색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박 대통령과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로 이어지는 '삼각 커넥션'을 정조준한 것이다.
특검은 2015년 7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경위가 수상하다고 봤다.
박 대통령이 삼성 합병을 돕는 대가로 자신의 '40년 지기'인 최씨 측에 거액을 지원한 게 아닌지 특검은 의심했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문형표(61)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 합병에 찬성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사실을 확인해 같은 달 31일 구속했다. 그는 특검이 구속한 '1호 인사'가 됐다.
특검은 곧바로 삼성 수사를 본격화했다. 지원금의 대가성과 부정한 청탁 여부를 확인하려는 수순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원활히 하고자 박 대통령 측에 삼성 합병 등을 청탁한 것으로 판단해 이달 16일 433억원대 뇌물, 97억원대 횡령, 국회 청문회 위증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의 구속 여부는 박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법원이 장고 끝에 19일 새벽 구속영장을 기각해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법원은 기각 사유로 ▲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부족 ▲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 관련자 조사를 포함한 현재까지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검은 조사에 불응하는 최순실씨를 박 대통령과 뇌물수수 공범으로 재차 소환 통보하고 새로운 증거 수집을 위해 전날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대한승마협회 부회장)를 전격 소환하는 등 다시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SK, 롯데, CJ, 부영 등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 가능성도 열어놓은 상태다.
◇ 블랙리스트 헌법 침해 규정…탄핵심판 영향줄듯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를 정부 지원에서 배제할 의도로 청와대 주도 아래 작성된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수사도 박 대통령이라는 목표 지점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특검은 이달 12일 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3명을 한꺼번에 구속하며 수사에 탄력을 받았다.
이어 최대 고비였던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체부 장관까지 이날 구속하면서 사실상 박 대통령만 남겨둔 상황이 됐다. 특검은 이들의 구속영장에 박 대통령의 지시로 명단 작성·관리가 시작됐다는 점을 적시했다고 한다.
이화여대 관련 비리 수사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21)씨에게 입학 및 학사 특혜를 제공한 교수들이 줄줄이 범법자로 전락해 구속됐다.
베스트셀러 역사추리소설의 저자 류철균(51·필명 이인화) 교수를 시작으로 남궁곤(56) 전 입학처장, 김경숙(62)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이인성(54) 의류산업학과 교수 등이 차례로 수감자 신세가 됐다.
특검은 윗선으로 지목된 최경희(55) 전 총장도 두 차례 소환 조사했으며 이르면 22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아울러 정부가 최씨 모녀를 지원해주는 대가로 이대 측에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몰아준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특검은 관련 의혹 수사를 늦어도 이달 말까지 매듭짓고 2월 초에는 박 대통령을 대면 조사한다는 일정표를 짜고 있다.
최근 "2월 초에는 반드시 대면 조사를 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도 심리적 압박의 일환이다. 다만 조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 전략을 짜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청와대 압수수색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특검이 현 정부의 '비행'에 분노한 여론을 의식해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이런 비판론은 표면화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시간적 제약이 분명 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보다는 법리를 촘촘하게 구성해 수사의 완결성을 높이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의혹을 부인하는 박 대통령과 거듭 소환에 응하지 않은 최순실씨 등 당사자들의 비협조 역시 특검이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특검 수사가 현재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어떤 영향을 줄 지도 관심사다.
형사상 범죄 혐의를 들여다보는 특검 수사와 탄핵 심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게 헌재 입장이지만 특검이 헌법 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강조하는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수사 등은 어떤 식으로든 박 대통령쪽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