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 변혁기 다보스포럼 '말 잔치' 끝에 폐막
무역장벽 치는 中 '자유무역' 수호 선언…"기회주의적 발언" 혹평도
빈부격차 해소 '유행어' 됐지만 올해도 해법 없는 공허한 논의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세계 정치, 경제, 학계 리더들이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 제47차 연차총회(다보스포럼)가 20일(현지시간) 나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는 등 국제 정세의 대변화가 예고되는 시기임을 고려한 듯 올해 포럼은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췄던 최근 추세와 달리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개막식 기조연설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강당을 꽉 채운 청중 앞에서 시 주석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심지어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인용해 빈부 격차 문제를 지적하며 "발전은 사람들의,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화를 거스르는 반엘리트주의의 급부상으로 위기감을 느낀 참석자들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면서 '미국 우선'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시 주석의 연설에 큰 박수를 보냈다.
트럼프의 미국이 떠난 자리를 중국이 대신해달라는 박수였고 시 주석은 한술 더 떠 다음날 유엔 제네바 사무국 연설에서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고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중국은 1964년부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핵무기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과거 75년간 세계를 관통했던 원칙과 룰이 하루아침에 뒤집힌 현장이었다며 미국이 보호무역을 선언하고 중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청하는 게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미국과 푸틴의 러시아가 밀월 관계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로이터 통신은 시 주석의 다보스 연설에 대해 "외교적 수사이면서 동시에 기회주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포럼에 앞서 슈퍼리치 8명이 세계인구 절반과 같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옥스팜 보고서가 공개됐지만, 포럼에서는 그 전과 마찬가지로 진부한 논의들만 오갔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은 2015년에도 상위 1%가 전 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5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막달레나 앤더손 스웨덴 재무장관은 "모두가 평등을 다보스에서 얘기하고 있고 평등이 새로운 유행이 됐다"고 비꼬았다.
AFP통신은 빈부 격차가 '부자들의 놀이터'인 다보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면서 헬리콥터로 도착한 억만장자와 정치인들, 유명인사들이 밤마다 비공개 파티를 열었다고 전했다.
포럼 이틀째부터는 포럼 세션보다 다보스의 와인바에서 비공개로 만나는 '비즈니스 미팅'이 더 많았다.
기술발전에 따른 일자리 유지, 노동조합 권한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을 위한 논의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전 세계적 반엘리트주의의 확산과 관련해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정부가 중산층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을 중산층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다보스 포럼의 주제를 '반엘리트주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이라고 비꼰 풍자만화를 실으면서 진부한 말 잔치보다는 세계화의 고통을 먼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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