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 '말 잘 듣는 노인' 노린다…전달책으로 이용
보이스피싱 연루 노인들 잇따라 검거…"수법 노출되자 전달방법 바꿔"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지난해 10월 유명 생활정보지에 '고령자 우대, 단순 서류 배달'이라는 내용의 구인광고가 올라왔다.
구직자 서모(61)씨는 이 광고를 보고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관계자 백모(34)씨는 "우리 회사는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받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이 말을 믿고 서류 배달 업무를 하던 서씨는 어느 날 갑자기 사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업체 관계자인 줄 알았던 중국동포 백씨는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고, 그가 배달한 서류는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대포통장 등이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지난 10월 사기 혐의로 백씨를 구속하고, 서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조직이 '일자리를 준다'며 노인을 유인, 대포통장이나 대포카드를 옮기는 전달책으로 끌어들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젊은 사람이 오토바이로 통장 등을 전달 수법이 경찰에 노출되자, 수사망을 피하려고 노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실버택배원으로 일하던 노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꼬드김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8일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고 통장을 인출책에게 전달한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사기방조)로 전직 실버택배원 박모(67)씨를 구속하고, 임모(7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박씨 등 실버택배원들에게 '고령자 우대, 고수익 알바' 광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한 건 배달에 최고 5만원까지 준다고 했다.
평소 일반 지하철 택배를 통해 버는 돈의 4∼5배에 달하는 돈을 준다는 말에박씨 등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다.
중국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으로 조직원의 지시를 받아 이동했고, 올해 들어서는 실버택배까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전달책으로 활동했다.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보이스피싱인 줄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지만,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이 인정돼 구속됐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노인을 이용하는 데는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경찰의 의심을 덜 살 수 있고, 노인들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어 비용도 적게 든다.
또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노인이 많아진 데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일을 시키기가 쉽다는 이유도 있다.
또 전달책이던 젊은 사람들이 중간에서 돈을 떼먹고 사라지는 사례가 잇따르자 이들보다 말을 잘 듣는 노인을 고용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용돈 벌이를 하고자 했던 노인들은 조직이 제공하는 높은 보수에 넘어가 결국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다.
경찰 관계자는 "노인을 상대로 구인광고를 해 전달책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으니 구직할 때 믿을만한 회사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며 "단순히 전달만 하더라도 처벌받는 만큼 보이스피싱 조직에 절대 연루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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