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서장도 속았다"…눈뜨고 코 베이는 '보이스피싱'
서울대 교수 사칭·국세청 국장과 친분 과시에 '속수무책'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나 서울대 의대 교수인데, 돈 좀 빌립시다."
한 남성은 지난 6일 오후 1시께 전북의 한 관공서 민원실 입구에 있는 공중전화부스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남성은 대담하게 전북의 한 세무서 세무서장 부속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교수를 사칭해 세무서장으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다.
세무서 직원을 사칭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세무서장을 상대로 한 사기행각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는 부속실 직원에게 세무서장인 A씨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전화는 A씨에게 연결됐다.
남성은 A씨에게 자신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산업의학과 교수'라고 소개했다.
근엄한 목소리와 넉살 좋은 말투로 국세청 모 국장과의 친분도 과시했다.
그는 "우석대학교에 들렀다가 회의 참석차 광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택시 안에 지갑을 놓고 내렸다. 돈이 없으니 50만원만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A씨에게 물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 남성에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둘은 남성이 전화를 건 장소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A씨는 서둘러 채비를 한 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말쑥한 차림의 남성이 서 있었다.
남성은 서로 제대로 인사할 시간도 갖지 않고 A씨가 건넨 50만원을 받아 유유히 사라졌다.
그의 행동이 수상쩍다고 느낀 A씨는 사무실로 돌아오는 도중 뒤늦게 사기임을 직감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출동한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그 남성을 검거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피해액도 비교적 적은 데다, 세무서장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를 당했다는 사실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A씨의 요청에 따라 이 사건을 수사과에 배당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수상한 전화가 걸려와 돈을 요구하면 상대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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