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단 페란테 열풍 韓상륙하나…"어린시절 내 모습 떠올라"

입력 2017-01-20 10:22
세계문단 페란테 열풍 韓상륙하나…"어린시절 내 모습 떠올라"

'나폴리 4부작' 번역가와 독자들 伊대사관저 만남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요즘 세계 문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작가지만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이탈리아나폴리에서 태어났고 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오랜 세월을 외국에서 보냈다는 정도다. 이름은 필명이고 외부와는 서면으로만 연락한다. 여성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1992년 첫 작품 '성가신 사랑'으로 이탈리아 평단을 놀라게 한 작가는 2011년부터 해마다 한 편씩 발표한 '나폴리 4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릴라와 레누, 두 여성의 60년 우정과 사랑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전세계 독자들은 SNS에 '#FerranteFever'(페란테 열병)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찬사를 보내고 있다. 4부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국내에는 '나의 눈부신 친구'(1부)가 지난해 7월,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2부)가 지난달 각각 번역돼 나왔다. 재능과 끼·미모까지 갖춘 릴라와 모범생 타입이지만 친구의 그늘에 가려진 레누. 이제 막 성인이 된 두 친구는 사랑하고 배신당하며, 사회가 가하는 온갖 압력과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중이다.





한국에도 불기 시작한 페란테 바람을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9일 저녁 '엘레나 페란테 문학의 밤' 행사가 열린 서울 한남동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저에서 옮긴이 김지우씨와 독자 60여 명이 페란테의 작품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김씨는 이탈리아 대사관 언론·경제 담당관이기도 하다.

김씨는 '나폴리 4부작'의 매력으로 우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를 꼽았다. 그는 "릴라는 읽을수록 알 수 없고 얄밉지만 매력적이다. 레누는 독자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1부는 유년기 두 친구의 우정 쌓기를 주로 그리지만, 2부에는 성폭행이나 불륜 등 통속소설에나 나올 법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김씨는 "막장 드라마인가 싶을 정도지만 다층적 텍스트로 해석되기 때문에 가볍지 않다. 작품에 드러나는 페미니즘과 계층 갈등,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몇 시간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라며 "진정성 담긴 흡인력 있는 문체가 이 모든 걸 하나로 묶어준다"고 찬사를 보냈다.



독자들도 각자 감상평을 내놨다.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책에서 절망을 이기는 힘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릴라와 레누가 유년기를 지난 1950년대는 이탈리아가 패전국의 멍에를 짊어진 시기였다. 김 교수는 "추락하는 듯한 시대에서 솟아오르는 끈질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거칠고 황량했던 시대, 외롭지 않게 운명을 이겨낸 이야기"라고 했다.

윤명희 파주중앙도서관장은 "올해 제 나이가 쉰 살이지만 읽는 동안 나와 함께 했던 친구들이 떠오르며 스쳐 지나갔다.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페란테가 화제를 모으는 데는 20년 넘도록 '얼굴 없는 작가'로 활동하는 점도 적잖게 작용했다. "책이 출간되면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만약 책에 대해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나서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작가의 부재로 생긴 빈 공간은 작품이 채우기 마련이라는 게 은둔의 이유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의 한 언론은 전속 출판사의 금전거래 기록 등을 분석해 작가가 독일문학 번역가 '아니타 라자'라고 보도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페란테를 내버려두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왔다.

마르코 델라 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페란테의 작품이 큰 호응을 받는 이유는 작가의 정체가 불분명하기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표면적으로는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지만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나폴리,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문학사 관점에서 보면 페란테가 엘사 모란테 등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작가들의 전통을 잇는다면서 "페란테의 성공은 곧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어의 성공"이라고 추켜세웠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필명은 '아서의 섬', '역사' 등의 작가 엘사 모란테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문학계는 추측하고 있다.

'나폴리 4부작'은 27개 나라에서 300만 부가 팔렸고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가 32부작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2만 명 안팎의 독자가 1·2부를 읽었다. 3·4부는 올해 안에 한길사에서 나올 예정이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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