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현석 "YG 차별점은 세련미…정치 관심없고 특혜 없었다"①

입력 2017-01-20 10:15
수정 2017-01-20 10:54
[단독] 양현석 "YG 차별점은 세련미…정치 관심없고 특혜 없었다"①

성장 거듭한 20년 찍고 2막 시작…"콘텐츠 사업 돈 많다고 성공 보장안돼"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류를 선도하는 기업인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48) 대표 프로듀서는 별 취미가 없다. 비즈니스에 필수라는 골프도 치지 않는다. 운동도 가볍게 걷기가 전부로 왕년에 춤추던 체력으로 버틴다. 부모가 조계사 인근서 불교용품점을 하는 불교 집안이지만 본인은 종교가 없다. 정치에는 관심이 '1'도 없다.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바쁜데 다른 분야는 어렵고 관심도 없어요."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YG 사옥에서 만난 양 대표는 "소속 배우 강동원 씨와 가끔 술을 마시는데 둘의 공감대가 있다"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웃었다.

그가 오로지 꽂힌 건 흑인음악으로, 어린 시절부터 권태기 없이 좋아하는 장르였다.

서태지와아이들 시절 1~4집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컴백홈' 때다. '하여가'와 '발해를 꿈꾸며'가 록 기반이었다면 '컴백홈'은 느린 힙합이었다. 기교보다 느낌대로 춤추는 걸 좋아한 그에게 최적화된 곡이었다.

서태지와아이들이 해체한 해인 1996년 현기획으로 출발해 1997년 YG를 설립해서도 한 우물을 팠다. 지누션, 원타임, 빅뱅, 투애니원 등을 키워내며 힙합 기반의 흑인음악 레이블로 정체성을 특화했다.

2011년 코스닥에 상장한 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차승원과 강동원, 이종석, 김희애 등 톱배우를 영입했고 패션, 화장품, 푸드 등 14개 계열사 668명의 직원을 거느린 시가총액 4천544억원(코스닥 65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의 집무실이 있는 지금의 사옥 7층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옆 1천 평 부지에 신사옥 건축이 한창이다.

지난 20년간 성장을 거듭하며 외연을 확장한 YG는 올해부터 새로운 20년을 위한 플랜의 첫발을 뗀다.

양 대표는 "재미있고 풍성한 내용이 담긴 두꺼운 책 1권을 마무리했다"며 "2권의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그에게 지난 20년의 소회와 올해 중점 사업과 비전, YG를 둘러싼 궁금증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20년간의 성장을 자평한다면.

▲ 설립 초기 지누션과 원타임이 성공해도 성장 속도가 느렸다. 한국에서 경쟁해 아무리 성공해도 수입 기반이 못 따라왔다. 인터넷의 발달로 싸이가 해외에 '강제 진출' 하고 빅뱅의 음악이 20개국에서 1위를 하는 시대가 왔다. 삼성이나 현대도 국내 수요만으로 영업했다면 지금의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장삿속이 아닌, 세련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란 생각을 했다. 돈이 많다고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듯이 콘텐츠 사업도 돈이 많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머리와 감각으로 하는 것이다. YG의 차별점은 세련미다. 그것만은 잃고 싶지 않았다.

-- 회사를 일군 자부심도 느낄 텐데.

▲ 국내 가수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도 애국하는 길이다. 아무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음악과 드라마, 영화의 인기는 콘텐츠 창작 역량이 있는 인적 자원 덕이다. 서태지와아이들 때만 해도 국내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지만 시장이 좁아 한계가 있었다. 일본에 나갔지만 잘 안됐는데 그땐 우리가 일본 문화를 동경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반대가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훨씬 잘 만들고 세련돼서다. 긍지가 있다.

-- 올해부터 빅뱅은 멤버들의 입대로 완전체 활동이 어렵고, 투애니원은 해체됐다. 핵심 그룹의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왔는데.

▲ 빅뱅은 내가 꿈꾼 기대 이상으로 크게 됐다. 모두 빅뱅의 부재를 걱정한다. 그러나 빅뱅은 초기부터 솔로 활동을 해 각자 화력이 세다. 올해부터 개별 활동에 돌입하는데 지드래곤은 솔로 앨범에 열정이 대단하고 승리에게도 3월까지 솔로 앨범을 완성하자고 했다. 대성이는 일본에서 돔 투어를 할 것이고 태양 역시 솔로 앨범을 낸다.

-- 그래도 투애니원의 해체는 갑작스러웠다.

▲ 공민지가 다른 회사로 이적했을 때 투애니원을 지키고 싶었다. 해체를 결정한 건 박봄의 정신 건강이 안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일'(마약 밀반입 논란) 이후 비난이 어마어마했다. 박봄은 그에 대한 스트레스와 죄책감뿐 아니라 투애니원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미련도 있었을 것이다. 봄이에게 '투애니원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사람 일은 모르니 S.E.S처럼 다시 뭉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들만큼 길진 않아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소속 연예인의 리스크 관리로 인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 가수가 적을 때는 생활을 같이해 일거수일투족을 알았지만 많아지다 보니 여느 기획사처럼 위기가 안 일어날 수 없다. 최대한 예측하고 조심하되 중요한 건 같은 일을 두 번 겪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몇몇 사건 사고가 있었기에 내실 다지는 작업을 하고 조언을 많이 한다. 진정한 오너는 잘될 때 맨 뒤에서 웃으며 서 있고 위기 때 맨 앞으로 뛰어가야 한다는 생각인데 아직은 실천한다고 여긴다. 연예인을 이끌어가는 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 지난해에는 YG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 '최순실 관련 특혜를 입었다' 등의 루머도 돌았다.

▲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면서 한쪽에 치우치는 게 조심스러워 의도적으로 피했다. 난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상을 준다는데 모자를 벗기 싫어 청와대에 가지 않은 적도 있다. 그랬더니 사무실로 찾아와 상을 전달해주더라.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도 바쁜데 정치나 권력 등 다른 쪽은 아예 관심이 없다. (YG에 입사했다는 루머가 돈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 씨도 한동안 남자인 줄 알았을 정도다. 또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터진 것도, 대외적인 사건·사고도 박근혜 정부 이전 일이다. YG 양민석 대표가 문화융성위원이 된 것 역시 싸이의 글로벌한 유명세 때문이지 우리가 무슨 힘을 발휘하려 한 게 아니다. 오히려 활용당한 것이고 혜택도 없었다. 사실이 아닌 일이 유언비어처럼 퍼져 속상하고 안타깝다.

-- 3년 전부터 빅뱅을 잇는 차세대가 등장했고 톱배우들도 영입했다.

▲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위너와 아이콘이다. 이들은 아직 빅뱅을 대체하기에는 부족하고 나에게도 배고픈 팀이다. 하지만 빅뱅도 데뷔 1년에 이 정도 반응을 얻진 못했다. 빅뱅이 10년을 달려 잘됐듯이 위너와 아이콘도 보필하고 지원하면 제대로 영역을 펼쳐갈 것이다. 차승원, 강동원, 김희애, 이종석 씨 등은 작품도 직접 골라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YG의 시스템과 지원에 고마움을 표시할 때 뿌듯하다.

-- 패션, 화장품, 푸드 등 사업 다각화 이유는.

▲ K팝 등 엔터테인먼트와 연계된 사업들이다. 해외를 다니며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왜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가 없을까'란 생각을 했다. 드라마 '대장금'을 봤겠지만 한국의 훌륭한 음식 문화도 중국, 일본보다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YG 콘텐츠와 연계해 한국 대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아울러 YG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한 주주에게 영업을 잘해서 수익을 돌려주는 것도 새롭게 생긴 역할이다.







-- YG 가수들은 유독 해외 반응이 대단한데 요즘 외부 환경이 좋지 않다. 일본 한류는 오랜 침체기이고 중국도 한한령(限韓令) 우려가 제기됐는데 돌파구는.

▲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콘텐츠를 만든 적이 없고 딱히 진출을 시도한 적도 없다. 국가적인 문제로 상황이 안 좋지만, 중국만 바라보고 콘텐츠를 만들지 않아 좋은 날이 오면 나쁜 날도 있다고 여긴다. 중국에서 돈 벌려고 만드는 건 앞으로도 안 한다. 일본은 K팝 한류가 일기 전부터 꾸준히 닦아 아이콘의 반응도 너무 좋다. 언젠가 '한류를 막는다고 막히겠느냐'는 논평을 본 적이 있다. 수입을 창출 못 할 뿐이지 불법 콘텐츠 등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하니 인기가 없다고 볼 수 없다.

--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 과거 사람들이 일본 문화나 홍콩 영화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됐다. 난 한류 경쟁력을 죽을 때까지 이끌어 가고 싶다. 한 시대의 유행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러니 남들보다 세련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행복한 건 내가 만든 걸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줄 때다. 수입은 인기에 비례해서 따라온다.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것도 설레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설레고 싶다. (②편에 계속)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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