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사람들의 초상…그레이엄 그린 단편소설 한권에
세계문학 단편선 '그레이엄 그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1904∼1991)의 모든 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묶은 책 '그레이엄 그린'이 출판사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스물네 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작가가 1954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90년까지 펴낸 단편집 4권의 수록작 49편, 단행본 형태로 발표하지 않은 4편을 추가해 모두 53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집필한 시기의 폭이 넓어 작품 경향의 미묘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초기 작품에 속하는 '파괴자들'은 혼자 사는 동네 노인의 집을 때려 부수는 어린 갱단원들의 이야기다. 소년들은 집을 파괴하면서 발견한 지폐를 불에 태워버릴 정도로 맹목적이다. 이들의 파괴적 행동은 전후 세대에게 기존 질서와 과감한 단절을 요구하는 작가의 선언문처럼 읽힌다.
대체로 우울한 어조인 초기 작품들은 '파괴자들'처럼 폭력적인 결말이 많다. 후기로 갈수록 특유의 가벼운 필치를 잃지 않으면서 인간 내면을 파고들어 용서와 희망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작가는 한때 공산주의에 심취했고 가톨릭으로 전향하는가 하면 영국의 해외정보기관 'MI6' 첩보원으로도 일했다. 작품에 반미 성향을 드러내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그를 40년간 밀착 감시했다는 기록도 있다. 작가는 이런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정치·성·범죄·종교 등 현대사회의 인간을 둘러싼 광범위한 화두를 던지며 '20세기라는 장르의 최고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기작에 속하는 '정보부 지부'에서는 정보기관 근무 경험을 넉넉한 유머로 녹여낸다. '국제우수레스토랑가이드'(IGGR) 심사관으로 일하던 주인공은 특수임무를 부여받는다. 레스토랑에서 같은 코스요리를 먹으며 관찰 대상자를 살피는 일. 몰래 지켜보는 주인공의 시선은 실감나면서도 익살스럽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단히 흥미롭고 때로 위험스럽기까지 한 직업에서 은퇴해야만 했다. 식욕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25편의 장편소설을 쓴 작가는 상대적으로 열린 결말이 필요한 단편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옮긴이 서창렬씨는 "그의 고백과는 상관없이 그레이엄 그린은 장편뿐 아니라 단편에서도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 수준의 거장이라는 게 세계문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96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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