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반려동물이 주는 슬픔 '펫 로스 증후군'

입력 2017-01-13 06:13
[김길원의 헬스노트] 반려동물이 주는 슬픔 '펫 로스 증후군'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 결혼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결혼해서도 데려와 키웠어요. 20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라 동생 같기도 하고 자식 같기도 했어요. 결혼 후 아이가 생기다 보니 강아지에게 좀 신경을 덜 쓸 때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이가 더 좋아하더라고요. 둘이 죽고 못 살 정도였어요. 그런데 강아지를 먼저 보내고 나니 생각보다 힘들어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 데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차라리 아이처럼 강아지 살려내라고 조르고 엉엉 울면 편해질 것 같은데 어른이 돼서 그럴 수도 없잖아요. 아이 키우느라 강아지한테 신경을 못 써준 게 정말 미안하고, 못 해준 것만 생각나요.

# 우연히 유기견 센터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제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에요. 집에 돌아오면 유일하게 저를 반겨주죠. 저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해서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할머니도 자주 아프곤 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어렸을 때를 기억하면 항상 외롭고 혼자 있는 게 두려웠어요. 이제는 혼자 지내는 게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아이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많이 아프네요. 병원에서 얼마 안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이 아이가 죽고 나면 저는 어떻게 살죠? 저 혼자 남겨지는 게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요.



앞선 사례처럼 요즘 '펫 로스(Pet Loss)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족처럼 사랑했던 반려동물이 죽은 후 상실감과 우울감이 생겼다는 게 주요 증상이다.

이런 증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려동물을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반려동물의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 죽음의 원인(질병 또는 사고)에 대한 분노·슬픔에서 비롯된 우울증 등이 뒤섞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우리나라는 다섯 집 가운데 한 집꼴로 개나 고양이를 기를 정도로 반려동물이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5년 기준으로 발표한 '반려동물 사육·관리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반려동물을 둔 가정은 2012년의 17.9%보다 약 4% 포인트 높아진 21.8%에 달했다. 추세대로 라면 반려동물 사육 가정의 비율이 지금쯤 네 집 가운데 한 집꼴로 높아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아픔과 상실감을 겪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죽으면 그 주인은 평균적으로 10개월 정도 슬픔을 경험하며, 1년 정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 자살까지 생각한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수명이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살아가는 동안 반려동물의 죽음은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미리 대비한다면 반려동물의 죽음이 불러오는 상실감과 우울감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 사회가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 상실감에 따른 감정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지지를 보내지 못하는 경향은 차츰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반려동물이 죽은 후 생길 수 있는 상실감과 우울감 등의 증상을 극복하는 요령을 삼성서울병원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전문가들의 도움말로 알아본다.



▲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겪고 있는 슬픔을 충분히 표현하라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죽음도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처럼 충분한 애도 기간이 필요하다. 아내, 남편, 가족, 가까운 친구들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어려움, 죄책감 등을 털어놓고 지지와 위로를 받는 게 좋다.

▲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장례식을 간소히 치르고 묘도 만들어주면 좋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을 치르고 그것을 기념하는 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것처럼 반려동물 역시 장례식, 묘소 등을 통해 애도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다른 반려동물을 바로 입양하기보다 애도 기간을 가져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또 다른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게 어떨 때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경우에는 소홀히 대하거나 슬픔으로 방치할 수도 있다. 또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충동적인 결정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좋지 않다.

▲ 자녀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라

아이들이 너무 슬퍼할 것 같다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숨기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되레 죽음에 대한 개념이 확고하지 않은 어린 자녀들은 반려동물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느끼거나 심한 공포감 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솔직하게 자녀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의 원인과 죽음에 관해 설명해주고, 그로 인한 감정과 생각들을 부모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 장례식을 함께 준비하고 치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 반려동물에 대한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하라

어떤 사람에게는 동물이 무섭기도 하고 한 번도 함께 지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또 동물에게서 깊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경험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비난으로 받아들인다거나 반대로 그 사람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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