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대 농부도 책가방 멘다…폐교위기 작은학교 살리자 사투

입력 2017-01-13 07:00
50∼60대 농부도 책가방 멘다…폐교위기 작은학교 살리자 사투

"마을 살려면 학교 있어야"… 교문에 현수막 달고 리플렛까지

(전국종합=연합뉴스) "학교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입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집니다."

전남 화순군 남면에 있는 사평초등학교 한연숙 교장은 방학이지만, 새 학기를 맞이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한때 2천여 명에 달하던 전교생 수는 2000년대 들어 30여 명 선으로 떨어져 신입생 유치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한 교장은 교문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학교를 홍보하고 리플렛을 찍어 읍내를 돌며 나눠주는 등 학생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농촌 학교가 인구 감소 등으로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폐교를 막기 위해 50~60대 주민들이 입학하는 등 주민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 50~60대 농부 '학교행'…"폐교만은 막아야"

전남 고흥군 과역면에 있는 영주고등학교는 관내 중학교에서 입학할 학생이 부족해 문을 닫을 뻔했지만, 50~60대 주민들이 입학하기로 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중학교 학력인정과정을 운영하는 고흥평생교육관에 다니던 만학도 9명은 영주고의 사연을 듣고 흔쾌히 입학하기로 했다.

미장원을 운영하는 한 주민도 입학을 원했지만, 손님이 찾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는 후문이다.

이번에 입학하기로 한 만학도는 50대에서 60대로 대부분 농사 등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학교 측은 농번기에는 결석해도 인정해줄 방침이다.

경북 청송군 현서고도 2014년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교위기에 직면했지만, 20~50대 중졸 주민 9명이 입학하면서 극적으로 폐교를 면했다.

이강선 영주고 교장은 "나이가 드신 분들이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사실 깜짝 놀랐다"며 "학생이 없어 자칫 문을 닫을 위기에 입학을 선뜻 해주신 만학도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불편한 점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할머니, 이주여성도 입학…힘 보태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초등학교도 폐교를 막기 위해 마을 노인과 이주여성을 신입생으로 모집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박희순(당시 73), 한영자(73) 할머니가 8살 아이들과 함께 입학해 1학년 과정을 시작했다.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인 박보람(당시 29)씨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입학식을 한 뒤 수업을 받고 있다.

김제 심창초등학교도 현재 할머니 학생 8명이 재학 중인 가운데 올 3월에도 할머니 2명이 추가로 입학할 예정이다.

전교생이 23명에 불과한 경남 함양 서하초등학교는 인근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틈틈이 학교 홍보 활동을 한다.

각 마을 면장이나 이장협의회 등을 찾아 학교가 최고의 교육·문화시설이라며 입학 권유를 주변에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교장·교사를 포함한 교사가 모두 9명이어서 학생 수 대비 맞춤·집중형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 학교의 관계자는 "2018년에 1학년으로 입학할 아이가 현재 학교가 위치한 서하면 안에는 없는 상태"라며 "내년에는 취학을 못 한 할머니·할아버지 가운데 희망자들을 모아 입학생 한 반을 꾸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교육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할머니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려낸 경우도 있다.

2016년 산청 금서초등학교에는 할머니 5명이 신입생으로 입학해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동 고전초등학교에는 2013년에 할머니 8명이 입학, 현재까지 4학년 과정까지 마쳤다.

◇ "신입생을 모셔라"…교문에 현수막, 리플렛까지

화순 사평초등학교는 최근 교문 앞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리플렛을 돌리며 신입생 유치를 하고 있다.

사평초는 현수막에서 무지개학교와 ECO 친환경건강학교, 대한민국 100대 아름다운 학교로 지정된 점을 강조하고 입학과 전학 때 장학금 3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

올해는 5·6학년을 대상으로 해외 수학여행을 전액 무료로 보낼 계획이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무료로 영어와 피아노, 골프, 태권도 등 방과후 특기적성교육을 실시하고 학생 개인별 맞춤형 학습과 생활지도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강원 평창군 용전중학교는 교장이 직접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입학을 설득해 신입생을 채웠다.

교사를 꿈꾸는 학생으로 구성된 동아리는 지역의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을 찾아가 학교를 홍보하고 동문회는 기금을 모아 매년 전교생에게 체육복과 장학금을 지급하는 노력을 기울여 학교를 살렸다.

◇ 생태학습으로 '차별화'…본교 승격 기적도

충남 아산의 거산초등학교는 2001년 전교생이 30여명에 불과해 폐교위기에 몰렸으나 지금은 재학생 108명의 학교로 성장했다.

폐교위기 당시 성남초 분교였으나, 2005년에는 본교로 승격되는 기적을 일궈냈다.

학교가 빠르게 성장한 배경은 대안학교식 체험 행사를 대폭 도입했다는 점이다.

폐교위기에 몰리자 기존 수업에 주변 환경을 이용한 생태학습, 문학수업, 문화예술교육을 녹여 차별화에 성공했다.

학생들은 매달 학교 밖 텃밭에서 야외 생태 수업을 하고 손수 농작물을 심고 가꾸며 생육 상태를 조사한 뒤 보고서를 쓴다.

학교 관계자는 "매일 아침 문학 공부도 하고 '1학생 1악기 배우기'를 하고 있어 학생은 물론, 부모들의 만족도도 굉장히 높다"며 "소문이 나면서 아산 시내는 물론, 자동차로 1시간 걸리는 천안에서까지 자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천, 이해용, 백도인, 김용민, 형민우, 한종구, 김선경 기자)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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