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과 문재인의 '얄궂은 운명'…"이제는 외나무다리"
"유엔 사무총장 밀어줬건만" vs "배신 아니다"…盧참배도 신경전
친노·참여정부 인사들, 검증 저격수 나설까…'양날의 검'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 후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예고하면서,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진영 대권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 등과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한때 같은 배를 탔던 반 전 총장과 친노·친문진영은 이제 외나무다리에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얄궂은 운명에 처했다.
특히 친노·친문에서는 반 전 총장을 '배신자'라고 비판하는 반면 반 전 총장 측은 "배신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등 감정싸움 양상까지 보여 양측의 앙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노·친문 측에서는 반 전 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청와대 외교보좌관, 외교장관이 되고 유엔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이후 도의를 져버리는 행동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친문진영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고(故)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한나라당이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반 전 총장을 경질하라고 요구했지만, 굳건히 버티면서 그를 지켜줬다"며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반 전 총장은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참배를 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 오면서도 '사적인 일정'이라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더라"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당시 반 전 총장이 이명박 정부의 시선을 의식해 참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반면 반 전 총장 측은 이를 '배신'으로 봐서는 안된다며 반박에 나섰다.
반 전 총장 측근으로 꼽히는 오준 전 주(駐) 유엔대사는 지난 5일 CBS라디오에 나와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 해 참배를 다녀왔다"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종의 비공식일정이었기 때문으로 안다. 뉴스거리가 별로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반 전 총장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를 굉장히 신경쓰시는 분"이라며 "배신이라든가 이런 비판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설 전에 봉하마을을 참배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 친노진영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별도로 연락이 온 것은 없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하게 이뤄지며 민주당 내에선 참여정부 당시 반 전 총장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친노 인사들이 반 전 총장의 '저격수'를 맡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안 지사의 경우 전날 반 전 총장을 향해 "철새정치로 규정한다. 이런 철새정치가 어떤 가공할만한 손해를 끼치는지 70여년간 봐왔다"고 맹공을 폈다.
이해찬 전 총리 역시 전면에 나설 수 있다. 특히 이 전 총리는 당내에서 외교안보통일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어, 반 전 총장의 유엔 활동에 대해 철저한 검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는 "검증은 언론에서 충분히 하지 않겠나"라며 "이 전 총리가 특정인을 겨냥해 나서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반 전 총장에 대한 지나친 공세가 친문·친노 진영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반 전 총장 역시 참여정부의 관료였던 만큼 그에 대한 의혹은 참여정부에 대한 의혹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반 전 총장에 대해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의혹'이 제기됐지만, '박연차 게이트'의 경우 친노·친문으로서도 결코 반가운 이슈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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