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주영호 선장·기관장 얼음같이 찬물서 '1시간의 사투'
바다 빠진 뒤 가까스로 배에 올랐으나 생사 갈려
(포항=연합뉴스) 임상현 기자 =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대형상선과 충돌해 뒤집힌 어선 선장과 기관장이 사고 당시 서로를 의지하며 1시간여 사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209주영호 선장 박모(57)씨와 기관장 김모(64)씨는 구룡포에서 40년이 넘게 배를 탄 베테랑이다. 한 곳에서 계속 일을 해 선주가 가장 믿고 의지하고 두 사람도 선·후배로 막역한 사이다.
이들은 지난달 25일 선원 5명과 함께 오징어를 잡기 위해 배를 타고 구룡포항을 떠났고 11일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만선의 기쁨을 안고 집으로 가던 중 선원들 꿈은 불과 하루를 앞두고 산산이 깨져 버렸다.
원목을 실으려고 러시아로 가던 홍콩선적 2만3천t급 대형상선이 바다 한가운데서 닻을 내리고 정지해 있던 주영호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선사 관계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선장 박씨에개 사고 당시 상황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배가 충돌할 때 선장 박씨는 조타실에, 기관장 김씨는 기관실에서 있었다. 야간 조업을 한 나머지 선원 5명은 선실에서 잤다.
대형어선이 들이받자 충격으로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선장과 기관장은 순식간에 바다에 빠졌다.
배 안에 있던 냉동 오징어 수백 상자도 쏟아져 배 주위 바다를 뒤덮었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배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얼음같이 찬물에 냉동 오징어로 뒤덮인 바다를 헤쳐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배에서 흘러내린 밧줄을 잡고 30여 분간 안간힘을 쓰며 사투를 벌인 끝에 두 사람은 가까스로 기울어진 갑판에 올랐다.
박씨는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으나 김씨는 배가 충돌할 때 머리를 다쳐 피를 너무 흘린 탓에 탈진으로 의식을 잃었다.
박씨는 충돌 당시 4∼5㎞ 떨어져 있던 선단에 무전으로 사고 상황을 알렸고 선단이 포항해경에 신고했다.
사고 직후 어선 4∼5척이 달려왔으나 파도가 워낙 높아 구조를 못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갑판에 올라온 지 20여분만에 해경 경비함이 도착해 이들을 헬기로 포항 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박씨는 생명을 건졌지만 김씨는 머리를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구조 3시간여 만에 안타깝게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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