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늘고 청탁금지법에 AI사태까지…570만 자영업자는 힘들다

입력 2017-01-11 05:31
빚 늘고 청탁금지법에 AI사태까지…570만 자영업자는 힘들다

21.2%는 월 매출 100만원 이하…작년 생계비 마련 가계대출 14%↑

청탁금지법·AI에 주택경기 악화로 음식점·부동산임대업 등 찬바람

대출 부실화 위기감 커져 금융당국도 잔뜩 긴장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한국 경제의 한 축인 자영업자들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사업으로 희망을 찾으려는 중년층과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나 갚아야 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소득이 정체되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자영업자의 어두운 앞날이 한국 경제의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 벼랑 끝 자영업자…소득은 그대론 데 빚만 잔뜩 늘어

자영업자가 한파를 만났다는 사실은 최근 여러 가지 경제지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작년 12월 자영업자의 소비지출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94로 한 달 전보다 4포인트(p) 떨어졌고 가계수입전망 CSI는 89로 11월보다 4p 내려갔다.

자영업자의 소비지출전망 CSI는 2년 만에, 가계수입전망 CSI는 4년 만에 각각 최저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의 심리가 크게 위축됐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고 지갑도 크게 열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자영업자의 소득 정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 등의 񟭐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 소득 증가율은 1.2%로, 임시·일용근로자(5.8%)나 상용근로자(2.1%)보다 훨씬 낮았다.

201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0.7%를 감안하면 실질 소득은 거의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전체 자영업체의 21.2%는 월 매출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빚은 크게 늘었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 대출액은 작년 9월 말 현재 464조5천억원(차주 수 141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9개월 동안 사업자금 명목의 사업자대출이 13.4% 불었고 생계비 마련 등을 위한 가계대출도 14.0% 급증했다.

자영업자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임대업, 음식점, 소매업 등의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는 약 570만명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이미 하루 평균 3천 명이 자영업체를 새로 차렸지만 매일 2천 명은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었다.



◇ 어디 기대야 하나…AI파동·주택하락 우려 등 악재 산적

자영업자의 상황이 나빠진 것은 기본적으로 내수가 좋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1.25%까지 내리고 정부가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민간소비는 뚜렷하게 살아나지 않고 있다.

가계는 미약한 소득 증가 등을 고려해 지갑을 닫고 있고 기업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문제는 자영업자를 둘러싼 악재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상황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선 작년 9월 말 시행된 청탁금지법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아직 청탁금지법으로 민간소비 위축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앞으로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에서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한은은 "청탁금지법 시행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당장 나타나기보다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측이 최근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주장한 것도 음식물, 선물 등의 허용 기준이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AI) 파동은 자영업자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작년 11월 충북 음성 등에서 AI가 발생하자 오리고기를 운영하는 음식점은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이번 겨울 대표적인 소규모 자영업체인 치킨집에도 AI 파동의 불똥이 튀면서 손님이 크게 끊겼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불안감이 적지 않다.

올해 주택경기가 악화하면 부동산임대업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부동산 가격 조정, 대출금리 상승 등의 충격이 발생할 경우 부동산임대업의 중·저신용등급 차주를 중심으로 채무상환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취약계층인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화할 가능성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생계와 직접 관련된 자영업자 대출에는 가수요가 없다"며 "금융위가 자영업자 대출 리스크 관리와 연착륙 유도를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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