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퇴임·라프산자니 사망…핵합의안 1년 만에 '위기일발'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행된 지 꼭 1년이 된 핵합의안(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 핵협상의 두 축이었던 미국과 이란 내부의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미국에선 핵협상을 성사한 주역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기가 20일 끝나면 이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다.
이란 역시 현 정부를 옹호한 거물급 정치인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서거했다. 핵협상을 추진한 중도·개혁 정부는 반서방 강경 보수파의 공세를 막아낼 든든한 방패를 잃은 셈이다.
핵협상은 표면적으로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이란의 수싸움이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국 내부의 반대파를 설득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7월 핵협상이 타결돼 핵합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자마자 양국 정부가 이에 대한 유권해석을 다르게 한 것도 강경파의 반대를 무마하려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란을 따질 것 없이 각국의 강경 보수파는 상대국을 '적국'으로 보고 협상의 상대가 애초부터 아니라는 입장에는 핵협상이 타결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핵협상은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며 이를 추진한 온건 개혁파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핵합의안에 따라 이란은 핵프로그램을 상당 부분 제한하고, 미국은 대(對)이란 제재를 지난해 1월 푸는 약속이 실제 이행됐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백지화될 수 있다는 불안 요소는 상수였다.
트럼프 미 대선 당선인은 핵합의안을 두고 미국이 경제적 이득을 전혀 얻지 못한다면서 변경 또는 최악에는 파기할 기세다.
트럼프 정권하에서 핵합의안의 운명은 이란에 적대적인 공화당 주도 의회의 압박, 이란의 우방 러시아와 관계, 이란이 개입해야 하는 시리아·이슬람국가(IS) 사태 등을 변수로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의 서거도 핵합의안에는 일단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란 의회의 보수파 의원 아아톨라 알리 모타하리는 9일 텔레그램을 통해 "라프산자니의 죽음은 보수파엔 긍정적 요인"이라는 글을 올렸다.
5월 재선에 도전하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하니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보수파 후보가 당선된다면 트럼프 미 정부와 엮이면서 핵합의안 이행은 최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13년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의 당선에는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끌어모은 중도·개혁 성향 유권자의 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2월 총선과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선거에서는 라프산자니 계파의 후보가 전국적으로 당선됐고 그 자신도 테헤란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기록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이란 최고권력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꼽혔다.
일각에선 라프산자니의 사망이 중도·개혁파를 결집하도록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 정치평론가 사데그 지바칼람은 블룸버그 통신에 "단기적으로는 강경파에 유리한 요소가 될 것"이라면서도 "개혁, 중도 세력은 당장 어려움을 겪겠지만 저변이 점점 확장되고 뿌리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라프산자니는 2013년 대선에서 후보로 등록했지만 보수적인 헌법수호위원회의 자격심사에서 탈락한 뒤 로하니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그의 탈락에 반발한 지지자들이 로하니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처럼 그가 사망했지만 정치적 '적통'인 로하니 대통령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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