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훈련 中 항모 이동 촉각…美항모와 조우하나
차이잉원 출국 기간 대만 위협 가능성…칼빈슨호 中견제 위해 파견
칼빈슨호 전력 우세하지만 中해안 지원전력도 무시못해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미국과 대만이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인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 전단의 향후 이동경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9일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 등에 따르면 중국 랴오닝호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미국을 경유, 중남미 순방길에 오르면서 군 통수권자가 비어있는 대만에 무력을 과시하기 위해 남중국해에서 북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모항을 칭다오(靑島)에 두고 있는 랴오닝호 전단은 지난해말 서해 훈련에 이어 동중국해, 서태평양을 거침없이 항행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남중국해에서 함재기 이착륙 등 훈련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대만 국방부는 8일 랴오닝함의 이동경로에 대해 "관련 정보는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를 지낸 데렉 미첼 미얀마 주재 미국 대사는 "랴오닝호 함대가 차이 총통 출국 기간에 대만해협을 따라 본토로 귀항할 경우 이는 대만, 특히 차이잉원 정부에 대한 중국의 '협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랴오닝호 전단의 이동 시기와 경로에 변수가 되는 것은 차이 총통의 출국 외에도 동아시아 지역으로 파견된 미 해군 태평양함대 소속의 칼 빈슨호 항모전단이다.
지난 5일 모항인 샌디에이고에서 출항한 칼빈슨호 전단은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를 거쳐 오는 20일께 아시아·태평양 해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전했다.
미 태평양함대 사령부는 이 항모 전단의 구체적 작전시기와 지역은 공개하지 않은채 동아시아 지역에서 포격, 대잠수함전, 기동훈련 등 해상 작전 전반을 점검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칼빈슨호 전단의 출격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국 랴오닝호 전단에 맞불을 놓으려는 포석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본 요코스카(橫須賀)항을 모항으로 한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가 수리에 들어가 서태평양 지역의 항모 공백 상태를 메우려는 계획의 일환이기도 하다.
칼빈슨호 전단이 동아시아 해역에 도착하게 되면 랴오닝호 전단의 움직임에 견제 요인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특히 미국과 중국 항모 전단이 이 해역에서 조우해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 동맹국인 영국이 항모 2척을 태평양 지역에 보내기로 한 것도 랴오닝함 이동경로와 시점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칼빈슨호는 1982년 취역해 1999년 대대적인 보수와 개량을 거친 세 번째 니미츠급 원자력 추진 항모로 구축함 메이어호, 머피호, 순양함 레이크 챔플레인호 등의 호위를 받는다. 2011년 파키스탄에서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수행한 전력으로도 유명하다.
두 항모의 전력을 비교하면 길이 333m, 너비 41m의 칼빈슨호는 7천500명의 승조원을 태운 9만3천t급의 원자력 추진 항모인 반면 길이 270m, 너비 38m의 랴오닝호는 승조원 2천700명을 태우고 6만t급의 증기터빈 엔진을 탑재했다.
랴오닝호의 갑판 면적도 니미츠급의 70% 정도에 불과하다. 칼빈슨호 항속은 30노트(시속 56㎞)에 이르고 랴오닝호도 최근 대만 서부 해역에서 30노트의 항속을 보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함재 전력은 칼빈슨호가 F-14, F-18 등 전투기와 전폭기 90대, 대형 조기경보기, 헬기 등을 갖추고 있고 랴오닝호는 젠(殲)-15를 비롯한 36대의 각종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다.
칼빈슨호가 캐터펄트 이륙 방식으로 한번에 20여대의 전투기를 띄울 수 있지만 랴오닝호는 스키점프식 활주 이륙으로 한번에 내보낼 수 있는 전투기가 12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레이더와 전자장비 부문에서 칼빈슨호가 랴오닝호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홍콩 군사평론가 량궈량(梁國樑)은 "단순 전력 비교가 어려운 것이 중국은 본토 해안에 미 항모를 제압할 수 있는 둥펑(東風)-21D 등 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전자설비를 함께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이 하이난(海南)성 싼야(三亞) 기지에 최소 4척의 핵잠수함을 운용하고 있고 남중국해 곳곳에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 인공섬 군사기지를 두고 있다는 점도 미국 항모 전단에는 위협요인이 된다.
이에 따라 중국이 차이 총통의 순방 일정이 끝나는 오는 15일까지 남중국해 일대에서 랴오닝호 전단의 훈련을 유지하면서 차이 총통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차이 총통이 미국 휴스턴을 경유한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측 인사와 회동하지 않는 등 중국을 자극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만큼 중국도 항모 북상 일정을 앞당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 총통이 오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대만으로 귀국하는 동안 보일 행보에 따라 항모의 이동 경로와 시기를 최종 확정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첼 대사는 "중국 항모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는 차이 총통이 미국 체류 기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랴오닝호 전단 소속으로 보이는 중국군 잠수함이 최근 말레이시아와 협력의 일환으로 남중국해에 말레이시아 사바주(州)에 기항한 점도 랴오닝호의 북상 시기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중 하나다.
보니 글레이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중국 항모 함대의 순항훈련이 수개월전에 계획돼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최근 남중국해 훈련은 차이 총통과 트럼프의 전화통화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이 대만 위협이라는 소기 성과를 거두고 미중 항모간 대치 국면을 회피하기 위해 칼빈슨호 전단이 동아시아 해역에 도착하기 전에 대만해협을 통한 북상을 서두를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군사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만군은 이에 대비한 군사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대만 해군의 예비역 중장 란닝리(蘭寧利)는 대만 연합보(聯合報)에 "랴오닝호 함대가 대만 안보를 위협할 경우에 대비해 슝펑(雄風) 2, 3호와 위차(魚叉) 등 미사일을 동원한 '섬멸' 계획을 이미 짜놓았다"고 말했다.
jo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