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갑질…다른 증권사 이직자에 성과급 지급 미뤄
이전 직장 성과급 못받은 직원 수백명…억대도 적지 않아
'이연지급제' 악용…퇴사후 3년 지나면 받을 길 없어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여의도 증권가가 성과급 시즌을 앞두고 잔치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밀린 성과급을 못 받아 애만 태우는 증권사 직원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권사들이 이른바 '성과급 이연 지급제'를 악용해 퇴사자들의 성과급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다른 증권사로 이직한 경우인데, 돌려받지 못한 성과급은 1명당 억대에 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전 직장(증권사)에서 발생한 성과급을 모두 돌려받지 못한 증권사 직원들은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주로 부동산이나 채권 관련 투자업무를 하는 직원들로, 업무 특성상 이직이 잦다.
시중 증권사 부동산 투자팀에서 일하는 A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팀 단위로 직장을 수차례 옮겼는데 전 직장에서 이연된 성과급을 대부분 받지 못했다"며 "팀 동료 직원 10명의 피해액을 모두 더하면 수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지난 2010년을 전후해 1억원 이상의 고액 성과급이 발생한 직원에게는 1~3년간 성과급을 나눠 주는 이연지급제를 시행해 왔다.
고액 성과급을 받기 위해 단기 실적만 내고는 타 증권사로 이직하는 이른바 '메뚜기 직원'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막으려는 목적이었다.
금융당국도 이맘때부터 증권·자산운용업계에 이 제도의 도입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작년 8월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명문화되기까지 했다. 시행령 제17조에서는 금융회사가 투자업무담당자의 성과보수의 이연 기간을 3년 이상으로 정하도록 못 박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이 규정을 악용해 퇴직자의 성과급 지급을 무기한 미루면서 결국 이들의 돈을 '꿀꺽'하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직원 B씨는 "재직 중인 직원의 성과급은 꼬박꼬박 잘 주면서도 퇴직한 직원에게는 내부 규정을 들먹이며 주지 않는 게 증권사들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정리해고자 등 '비자발적 퇴사자'에게는 밀린 성과급을 일괄 지급하면서도 이직 목적으로 퇴사한 '자발적 퇴사자'에게는 지급을 무기한 미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통상 이직자는 스카우트를 통해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대부분인데 이때 전 직장에서 받지 못할 성과급까지 고려해 몸값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며 "이직 퇴사자에게 성과급을 미루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 성과급도 임금의 일종이기 때문에 퇴사했더라도 전 직장으로부터 당연히 돌려받을 권리가 있지만, 퇴사자들은 막상 이를 요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A씨는 "전 직장에 소송을 걸기라도 했다간 업계에 소문이 쫙 퍼져 더는 이직을 할 수도 없고 현 직장에서도 '요주의 인물'이 된다"면서 "주변에 소송을 건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못 받은 성과급은 퇴사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면 받을 권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퇴직할 때 받지 못한 성과급은 임금채권으로 전환되는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이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에 불과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 오랜 관행 때문에 능력 있는 증권맨이나 펀드매니저들이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직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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