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보상금 챙겨가고 사육비는 체불" 축산기업에 농심 '부글'

입력 2017-01-07 07:33
수정 2017-01-07 11:00
"AI 보상금 챙겨가고 사육비는 체불" 축산기업에 농심 '부글'

살처분 보상금 농민엔 '그림의 떡'…기업 챙겨가면 위탁농은 '푼돈'만

"보상금·생계 지원비 지연에 사육비도 못 받아" 농민들 소송 채비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묻은 지가 언제여? 두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살처분 보상금도, 생계 지원비도 구경조차 못 했구먼. 먹고 살려면 여기저기서 빚을 내는 수밖에 없어. 설을 어떻게 지낼지 막막해"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지 한 달 보름을 훌쩍 넘기면서 가금류 사육 농가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입식 후 보통 닭은 한 달, 오리는 40∼45일이면 상품으로 출하되기 때문에 이미 생산 주기를 두 번 가까이 놓친 셈이다.

출하를 못 해 소득이 없는 데다 사육비마저 고스란히 날려 주머니는 텅 비어 가지만, 피해 보상과 지원은 더디기만 하다.

축산기업에서 육계 14만 마리를 위탁받아 키우다 모두 살처분한 박모(61·충북 음성군 맹동면) 씨는 "회사에서 보상금을 신청했다고 하는데 보상금이 나와도 병아리 값, 사룟값 명목으로 떼어가고 나면 실제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몇 푼 안 된다"고 푸념했다.

박 씨는 11월 병아리를 입식한 뒤 깔짚, 난방비, 인건비 등으로 큰 돈을 들였다. 보상비를 받아봤자 본전에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마리당 보상금이 1천원이 약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 중에 많아야 300∼400원 정도만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는 체념한 듯 말했다.

AI 피해가 컸던 2014년에도 약간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 씨는 "당장 필요한 생활 자금조차 없어 여기저기서 사채를 끌어다 쓰는 형편"이라며 "사정을 알고 이자를 안 받고 빌려주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빚은 자꾸 늘어만 간다"고 탄식했다.

보상금은 정상적으로 닭을 출하하고 받는 사육비(마리당 600∼700원)에도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살처분 이후 생기는 공백기다.

여러 번의 사육 주기를 놓칠 수밖에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재입식까지 최소한 3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생계안정 자금이 지원되지만, 살처분 가축 종류, 마릿수 등에 따라 혜택이 축소되고, 전혀 못 받는 농가도 적지 않다.



보상금을 놓고 축산기업과 위탁 농가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도 벌어진다.

기업들이 사육비는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서 살처분 보상금은 꼬박꼬박 챙기려다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오리 2만 마리를 살처분한 정모(56·음성군 맹동면) 씨는 "업체에서 못 받은 사육비가 1억원 정도 된다. 3억원 넘게 못 받은 농가도 있다"며 "살처분 보상금을 농가에 지급해 달라고 군청에 요청했지만 실 소유주인 회사와 합의가 되지 않으면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정 씨는 "회사에서 보상금을 받아서 농가에 나눠주겠다지만 사육비도 잔뜩 밀려 있는 마당에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있겠냐"며 "이번에는 데모를 하든 뭘 하든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육비가 밀린 정 씨를 비롯한 농가들은 축산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낼 채비를 하고 있다.

축산계열화사업에 관한 법률은 약자인 농가 보호를 위해 사육경비 지급 기간까지 못박고 있다.

계열화 사업자는 지급 기일을 출하가 끝난 날로부터 영업일 기준으로 25일 안에서 최단 기간으로 정해야 하며,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만 협의를 거쳐 25일을 초과할 수 있게 돼 있다.

기업과 위탁 계약을 맺고 계열화한 농가가 워낙 많은 현실을 고려한 규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가금류 사육 농가의 계열화 비율은 2015년 12월 기준으로 육계 91.4%, 오리 92.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듯 2014년 AI 때 지급된 보상금 1천271억원 중 개인농장에 지급된 금액은 752억원으로 전체의 59.1%에 불과했다.

이번 AI 사태의 경우 이미 지난 4일 현재 살처분 보상금이 2천394억 원에 달하며, 지금까지 이 중 약 91억원만 지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농식품부 이제용 사무관은 "살처분 보상금은 국비와 지방비가 8 대 2 비율로 집행된다"며 "지자체의 경우 연말연시 예산 운용이 여의치 않은 곳이 많아 피해 회복을 위해 일단 국비 집행을 먼저 하고 있으며, 오는 9일께부터는 본격적인 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AI 발생 시 축산기업과 위탁 농가의 책임 및 비용 분배를 공정하게 하려고 관련 규정을 개정해 표준계약서 활용을 권장하고 있으며, 2015년 기준으로 활용률이 75%를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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