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당에서 국민의 당으로"…영국 보수당 180년 생존 비결은
박지향 서울대 교수 '정당의 생명력' 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해 12월 새누리당에서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29명이 "진정한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며 집단 탈당하면서 보수 정당이 분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 정당의 이합집산은 끊임없이 있었지만, 보수 정당에서 국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명 이상이 한꺼번에 탈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태동한 영국에서는 '보수당'이 1830년대 이후 당명 변경이나 분열 없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 영국을 이끄는 테리사 메이 총리도 보수당 소속이다.
영국 보수당이 탄생했던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제24대 임금인 헌종이 즉위했다. 이 정당이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약 180년간 존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신간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은 영국사를 전공한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1850년대 "멍청한 당"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영국 보수당이 "국민의 당"으로 거듭난 역사를 살핀 책이다.
기본적으로 영국 보수당은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다.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 공동체적 연대와 애국심을 중시한다. 또 적극적인 변화를 거부하고,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당이 개혁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러운 개혁은 사회에 필요하다고 봤다. 보수당은 보수주의의 원칙 아래서 유연한 정책을 펼쳐왔다.
저자는 영국 보수당이 두 세기 가까이 생존한 원인 중 하나로 영국인들의 개인주의를 꼽는다. 영국인들은 예부터 개인의 노력과 성취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대륙국에 비해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작았다.
그러나 보수당의 성공 비결을 영국인의 성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저자는 영국 보수당이 1846년 곡물법 폐지를 두고 당내에서 자유무역주의 세력과 보호무역주의 세력이 대립한 뒤 한 차례도 큰 분란을 겪지 않은 점에 주목한다. 선거에서 패배해도 분열하지 않는 '결속과 충성심'은 영국인에게 신뢰를 심어줬다.
또 그는 보수당의 경쟁 정당인 노동당이 주로 노동자의 생각을 대변해온 데 반해 보수당은 영국인 전체를 아우르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한 것도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지지자들을 조직하고 선전하는 능력과 국가경영 능력에서도 보수당이 줄곧 노동당에 앞섰다고 평가한다.
다만 저자는 영국 보수당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전망한다. 그는 "1900년에 보수당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도 지지를 받는 전국 정당이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남부 잉글랜드의 당으로 전락했다"며 영국 북부 지역과 청년층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300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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