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중 아홉이 화장'…부족해지는 봉안 시설
부산 7년 뒤면 포화상태…순환개념의 장사문화로 바꿔야
(부산=연합뉴스) 김상현 기자 = 지난해 말 경남에 사는 A 씨는 투병 생활을 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서둘러 할아버지의 주민등록지를 부산으로 옮겼다.
부산의 공설 화장시설인 영락공원을 이용하고 추모공원 봉안당에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장례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속히 바뀌면서 A와 같이 다소 편법을 동원하더라도 이용이 편리하고 비용이 싼 공설 장사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부산의 화장률은 90.9%로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 매장보다 화장을 선택했다.
전국평균 화장률 80.8%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아 전국 최고 수준이다.
부산의 화장률이 높아지면서 당장 급한 것이 유골을 안치하는 봉안시설이다.
부산에는 1995년 화장시설과 함께 개장한 영락공원에 8만4천 기의 봉안시설이 있고, 제2 영락공원으로 2008년 문을 연 추모공원에도 13만기 정도의 봉안시설이 있다.
하지만 영락공원 봉안시설은 이미 자리가 다 찼고 추모공원내 봉안시설도 50%가량 주인을 찾았다.
이 같은 추세라면 지금부터 7년 뒤인 2024년이면 부산의 공설 봉안시설은 포화상태에 달해 더는 유골을 모실 곳이 없게 된다.
상황이 이렇지만, 부산시는 당장 추가 봉안시설 확보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도시권역 안에 새로운 봉안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주민 민원이다. 주민 반대를 무릅쓰고 새로운 봉안시설을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시로서는 기존 장사시설의 유휴 부지 등에 봉안시설을 증축하거나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고작이다.
부산의 공설 장사시설은 부산 시민만 이용할 수 있고, 15년 안치 기준으로 32만6천원의 사용료를 받는다.
사설 봉안시설이 위치에 따라 1기당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 단위까지 사용료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렴하다.
따라서 화장과 함께 공설 장사시설의 봉안 수요는 꾸준히 늘 수밖에 없다.
부산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봉안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장사문화를 확 바꿔야 한다"며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봉안당은 일정 기간 이용한 뒤 비워주고, 빈 봉안시설은 재사용하는 등 순환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장사 관련 시 조례를 개정해 봉안시설의 연장 설치 기간을 1회에 한해 15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초 안치 이후 30년이 지나면 무조건 봉안시설을 비워 재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기로 한 것이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봉안시설 재사용을 꺼리는 우리나라의 장사문화이다.
대통령 후보들까지 선거를 앞두고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등 조상의 묏자리가 후손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재래 관념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한 순환 방식의 장사문화는 자리 잡기 어렵다.
지금도 부산 영락공원 봉안시설에는 이장하고 남은 봉안당이 7∼8%가량 있지만, 이곳에 선뜻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모시겠다는 유족은 거의 없다.
부산시 관계자는 8일 "봉안시설 부족이 점점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공설 장사시설 이용자를 '사망 당시' 부산에 주소를 둔 사람에서 '사망 전날' 부산에 주소를 둔 사람으로 조례를 바꿀 예정"이라며 "상징적인 조치이지만 그만큼 봉안시설 부족이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설 확충만으로는 봉안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순환개념의 장사문화 확산과 함께 수목장이나 자연장의 비중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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