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자회사 솔리다임이 내년 미국 증시 입성을 목표로 상장 주관사단을 선정하며 기업공개(IPO)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기업 가치가 최대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다만, 과거 수조원대 적자를 감내했던 모회사 주주들 사이에서는 지분 희석에 따른 디스카운트를 둘러싼 반발 기류가 거세지고 있다.
●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대표 주관사…100억 달러 조달 추진
8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대표 주관사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선정했다. 주관사단에는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 UBS 등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도 대거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소식통들은 솔리다임이 이번 공모를 통해 약 10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상장 시점은 이르면 2027년으로 거론된다. 목표 기업 가치는 최대 1000억 달러 수준이다. 솔리다임은 현재 두 대표 주관사와 함께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IPO) 라운드 마무리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SK하이닉스는 "자회사 솔리다임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현지 주관사단을 구성하는 등 상장 준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 LG엔솔·카카오와 무엇이 다른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자회사 상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나 카카오 계열사 사례를 연상시키며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슈다. 다만 이번 솔리다임의 상장은 기존의 '쪼개기 상장'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쪼개기 상장의 본질은 유망한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 '물적분할 후 재상장'이었다. LG화학 주주들은 전통적인 석유화학 사업보다 미래 성장성이 높은 2차전지 사업을 보고 주식을 매수했다. 하지만 사측은 2차전지만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다. 기존 주주에게 주식이 분배되는 인적분할과 달리, 물적분할은 신설 법인의 지분을 모회사가 100% 소유한다. 기존 주주들은 2차전지 법인의 주식을 한 주도 손에 쥐지 못했다.
문제는 쪼개진 자회사가 다시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본격화됐다. 국내 자본시장의 투자 자금이 한정된 상황에서 유망 자회사가 상장하자, 시장 자금은 배터리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으로 쏠렸다. 모회사인 LG화학은 알맹이가 빠져나간 껍데기 회사 취급을 받으며 주가가 급락했다. 카카오도 마찬가지 구조였다.
솔리다임은 기존의 사업부를 분할한 방식이 아니다. 2021년 SK하이닉스가 90억 달러를 들여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한 뒤 만든 미국 법인이다. 상장 무대도 SK하이닉스와 같은 시장(코스닥)이 아닌 미국 시장(나스닥)이다. 국내 수급 잠식을 최소화하고 글로벌 유동성을 조달한다는 점에서 기존 쪼개기 상장과는 일부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 고통은 주주가, 과실은 나눠갖나
구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지배구조 전문가들과 소액주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수년간 이어진 적자의 고통을 모회사 주주들이 짊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솔리다임은 2021년 인수 이후 반도체 하락 사이클의 직격탄을 맞았다. 2022년 3조 3000억원, 2023년 4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누적 적자만 7조원을 넘겼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모회사인 SK하이닉스는 유상증자와 대여금 명목으로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솔리다임을 지원하기 위한 현금 유출과 자회사 실적 악화 부담은 고스란히 SK하이닉스 주가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솔리다임이 없었다면 SK하이닉스 실적에 수익으로 반영돼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지거나 배당금 같은 주주환원 재원으로 쓰일 수도 있었다.
주주들의 불만은 솔리다임이 AI 데이터센터 열풍을 타고 고용량 기업용 SSD 시장의 핵심 공급사로 급부상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하자마자 상장이 가시화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적자일 때는 모회사 현금으로 틀어막으며 주주들이 고통을 분담했는데,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외부 투자자에게 과실을 떼어준다"는 박탈감이다.
나아가 미국에 상장하더라도 IPO 과정에서 대규모 신주 발행이 이뤄지면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솔리다임 지분율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알짜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 하락은 모회사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 IPO 강행이라면 주주환원 가이드라인도 내놔야
시장 전문가들은 상장 추진에 앞서 SK하이닉스가 모회사 주주 보호를 위한 명확한 자금 배분 원칙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조달 자금의 구분이다.
솔리다임이 신주를 발행해 조달하는 자금은 솔리다임 장부에 반영된다. 이는 생산설비 증설과 연구개발, 인력 확보 등에 활용돼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쓰일 전망이다. 이를 통해 솔리다임이 낸드 사업에서 글로벌 톱티어 기업으로 도약한다면 향후 연결 실적이 모회사 SK하이닉스에 더해져 중장기적으로 모회사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모회사인 SK하이닉스가 보유 지분을 매각해 회수하게 되는 '구주매출' 대금은 단순 사내 유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회사 상장으로 모회사가 얻게된 현금을 모회사 주주를 위한 주주환원 재원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별배당이나 대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에 투입함으로써 지분 희석에 따른 가치 하락분을 적극 상쇄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