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제작진이 역사 왜곡을 이유로 고발당하자 실제 형사처벌이 가능할지 관심이 쏠린다.
'암살자(들)'은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1974년 8월 15일 총을 쏴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실화를 소재로 했다.
극 중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계획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일부 인물이 제기하는 장면이 있어 역사 왜곡이란 비판이 정치권 및 일각에서 나왔다.
검사 출신 국민의힘 주지우 의원은 "사자명예훼손죄에 명백히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종배 국민의힘 전 서울시의원은 제작진을 유족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법적 처벌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혐의가 성립하려면 단순 의견 표명이 아닌 구체적 허위 '사실'이 적시돼야 하고, 허위임을 알면서도 적시했다는 고의도 있어야 해서다.
이를 통해 박 전 대통령 혹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점까지 입증돼야 처벌받는다.
영화는 언론 보도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창작물인 만큼 내용이 허위사실 적시로 분류될 가능성 자체가 낮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암사자(들)은 '등장인물과 구체적 사건은 일부 각색됐다'고 영화 초반부에 알리며 픽션임을 명백히 밝히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태연의 김태연 변호사는 "영화가 허위사실 적시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국 관람객의 '인식'일 텐데, 대다수 관객은 이 영화가 픽션임을 인지할 것"이라며 "창작물을 사실 적시로 보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형사 전문 변호사도 "영화를 보면 적시하는 내용이 '사실'로 보일 순 있겠지만 명확히 말하자면 극적 상상력을 토대로 의견을 선보이는 것"이라며 "제작진 측에서도 이런 논란을 예상했기 때문에 각색했다는 문구를 띄운 게 아니겠나"고 말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고인의 유족이 직접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다. 박 전 대통령 유족이 고소하지 않는다면 수사도 불가능하다.
창작물에 대해 제작자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는 드물다.
2006년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 제작진이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드라마에서 고(故) 장택상 전 국무총리가 이 전 대통령에게 '친일경찰' 박모씨를 "사건 해결의 최대 공로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이 장면이 이 전 대통령과 장 전 총리가 친일파로서 공산당 지폐위조 사건인 '정판사 사건'을 경찰을 동원해 해결한 것처럼 묘사한 것이라며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법원은 무죄로 판결하며 "드라마의 특정 장면에 불과한 것으로 이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냈다. "실존 인물에 의한 역사적 사실보다 가상 인물에 의한 허구의 사실이 더 많은 드라마라는 점이 인정되고 구체적인 허위 사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손해배상은 이야기가 다르다. 만약 박 전 대통령 유족이 제작진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인용될 가능성이 없진 않다는 의견도 있다.
형사 사건은 엄격한 증명을 전제로 하는 것에 비해 민사 소송에선 입증 부담이 다소 덜하기 때문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국 전환용으로 육 여사를 암살하려 했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인륜에 반하는 극단적인 사례"라며 "인격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유족이 소송을 내면 명예훼손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짚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 유족이 배상을 받은 사례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씨가 10·26 사건에 관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2006년 1심에서 1억원 배상 판결을 받은 것이다.
박씨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경애·추모 감정이 영화로 침해됐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이 소송은 2008년 항소심에서 양측이 재판부의 조정안을 받아들여 종결됐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