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은 시작일 뿐…삼성전자가 본 메모리 수요

입력 2026-09-29 12:57
수정 2026-09-29 12:58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반도체 수요는 과거 메모리 호황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출발한 수요가 추론과 에이전틱 AI의 확산에 따라 일반 D램과 낸드까지 넓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태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기획팀 부사장은 29일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 기업설명회(IR)에서 메모리 산업의 변화를 설명하며 AI가 메모리 전반의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초기 생성형 AI 투자가 집중됐을 때 반도체 수요를 이끈 것은 모델 학습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이었다. 김 부사장은 당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AI가 HBM 이외의 메모리 수요까지 크게 늘릴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HBM은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품목이었다. 오히려 기존 메모리 재고를 어떻게 평상시 수준으로 낮출지가 고민의 초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상황은 학습된 AI 모델이 실제 서비스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추론의 중요성이 커지고 최근 에이전틱 AI가 등장하면서 일반적인 서버용 D램과 SSD에 쓰이는 낸드 수요도 빠르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과거 반도체 사이클과 다른 변화로 꼽은 것은 수요가 확대되는 속도와 범위다. 스마트폰은 연간 출하 규모가 비교적 일정해 필요한 메모리 양을 가늠할 수 있다. AI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메모리를 사용할지는 업계에서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김 부사장은 AI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다시 투자에 활용하는 선순환의 가능성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급 측면의 병목도 있다. 김 부사장에 따르면 같은 용량의 메모리를 생산하는 데 HBM은 일반 D램보다 약 3배의 웨이퍼가 필요하고 공정도 더 길다. HBM 생산이 늘수록 기존 설비로 공급할 수 있는 일반 D램 물량에 제약이 생기는 구조다. 그는 HBM으로 생산 자원이 몰린 현재는 일반 D램의 웨이퍼당 수익성이 오히려 더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낸드 시장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크게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대응해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함께 활용하는 전략을 강조했다. HBM4부터는 메모리 공정뿐 아니라 베이스 다이에 적용되는 파운드리 로직 공정과의 결합이 중요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고성능·고용량 메모리를 요구하는 현재의 시장이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생산능력 확충도 추진해 고객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노미정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상무는 이날 파운드리 고객 수가 2017년 사업부 출범 당시보다 현재 약 3배로 늘었으며, 2029년에는 약 4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AI·고성능컴퓨팅(HPC) 고객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확대하고,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의 두 번째 공장을 2030년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완제품을 담당하는 DX부문도 AI 확산에 맞춰 미래 사업을 키운다. 백종수 삼성전자 DX부문 기획 부사장은 고성능 다목적 휴머노이드를 로봇 사업의 핵심 방향으로 제시하고, 사내 현장에서 활용 사례를 쌓아 단계적으로 사업화하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대응해 공조 사업을 상업용 공조와 중앙 공조 분야로 넓히는 한편, 의료기술과 전장 사업에서도 AI를 활용한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앞서 공시한 주주환원 계획도 재확인했다. 다니엘 오 IR팀장 부사장은 올해 남은 기간 90조~110조원 규모의 추가 주주환원과 3분기 총 30조원 배당 계획을 설명하고, 잔여 주주환원 재원에 관한 계획을 가능한 한 빨리 공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