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남의 A컷을 보고 내 인생이 초라해질 때

입력 2026-09-28 13:30
"부러움, 반드시 없애야 할 감정만은 아냐"


친한 친구가 좋은 집으로 이사했다. 햇빛이 잘 드는 거실도 좋았고 창밖 풍경도 근사했다. “정말 잘됐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친구가 잘된 것이 기뻤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 생긴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우리 집 거실이 조금 좁아 보인다. 오래 쓴 소파가 유난히 낡아 보이고, 갑자기 대출금과 통장 잔고가 떠오른다. 친구를 시기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하다.

긴 명절 연휴 화려한 하루하루가 올라오는 SNS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고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저도 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아져요.”

동창의 승진이나 연봉, 집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갑자기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다는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비교의 종목도 늘어난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 정도였다면 어느 순간 직장과 연봉, 집과 자산이 추가되고, 결혼 후에는 배우자와 자녀의 성적과 진학까지 합류한다. 살다 보면 어느새 비교 종합선물세트가 완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내 삶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제까지 만족스러웠던 집도, 직장도, 통장 잔고도 그대로인데 남의 삶을 본 것만으로 내 삶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이는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의 일종인데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를 절대적인 기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변인을 기준점 삼아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그중 나보다 더 잘하고 있거나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과 자신을 견주는 것을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라고 한다.

비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나보다 앞선 사람을 보며 “저 사람처럼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목표와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남의 성취에 대한 정보가 나의 가치에 대한 판정으로 바뀔 때다.

친구가 승진했다는 것은 원래 친구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아직 승진하지 못했다”로 바뀐다. 친구가 좋은 집을 샀다는 소식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했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뿐인데 이상하게 내 인생에서 점수가 깎인다.

특히 비교 대상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질수록 마음은 더 흔들리기도 한다. 아주 먼 곳에 있는 유명인의 일보다 나와 비슷하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승진이나 집 이야기가 더 신경 쓰이는 이유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의 처지가 기대보다 불리하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불만과 박탈감, 즉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이런 비교를 하루 종일 도와주는 아주 친절한 도구가 있다. 바로 SNS다. 흥미롭게도 SNS마다 전시하는 ‘나’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 인스타그램에는 잘난 나를 올리고, X에는 망가진 나를 올린다. 스레드에는 그 모든 것을 제법 그럴듯하게 유려한 글이 된 나를 올린다. 하나의 사람이 플랫폼을 옮겨 다니며 본캐와 부캐를 편집해 내보내는 셈이다.

그 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은 삶의 A컷을 모아 놓기에 꽤 좋은 공간이다. 여행, 좋은 식당, 승진, 새집, 아이의 합격 소식은 올라온다. 하지만 멋진 여행 사진을 찍기 직전 가족끼리 싸운 일이나 사진 백 장을 찍고 서로 짜증 냈던 순간까지 같은 비율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근사한 새집 사진 바깥에 아직 뜯지 못한 이삿짐 상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도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서는 꽤 많은 B컷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남의 A컷을 내 삶의 B컷과 비교한다. 나는 내 삶의 원본 파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의 피곤함도 알고, 카드 값도 알고, 배우자와 다퉜던 일도, 어제 했던 실수와 오늘 미뤄둔 일도 모두 알고 있다. 반면 화면 속 타인의 삶은 잘 선택되고 편집된 몇 장면으로 만난다. 그러니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아니다.

남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내 인생의 평범한 월요일을 비교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결심한다고 비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비교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자기평가 방식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비교가 지금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고 마음이 불편해졌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저것은 원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이 순간 중요해진 것인가.’

친구의 승진이 부럽다고 해서 반드시 나도 승진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더 높은 직책에 따르는 책임과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의 삶이 내가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친구의 넓은 집이 부럽더라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집의 크기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일 수 있다.

그래서 부러움은 반드시 없애야 할 감정만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려주는 정보가 된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동시에 조금 부러워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그 정도의 모순이 얼마든지 함께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조금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오히려 삶의 B컷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평범한 저녁,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을 해낸 날, 실패하고도 다시 출근했던 아침, 누구에게 보여줄 일도 없지만 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던 시간들. SNS에 올리기에는 심심하고 ‘좋아요’를 많이 받을 일도 없지만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대부분 이런 순간들이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B컷 속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많이 들어 있다. 인생의 의미는 가장 멋지게 나온 사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지 않았던 시간,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노력, 자랑할 것 없었던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천천히 만들어진다. 친구의 멋진 집에서 돌아온 저녁, 갑자기 우리 집이 조금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럴 때 집의 크기를 다시 재어볼 필요는 없다. 달라진 것은 집이 아니라 잠시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자일지도 모른다.

남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내 인생의 평범한 월요일을 비교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내가 들고 있는 그 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A컷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남지만, 수많은 B컷은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자문> 김기원 가야삼성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 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이미지 생성 = 챗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