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물가 지표가 바로 개인소비지출(PCE)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분석국(BEA)이 최근 PCE 물가를 계산하는 방식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기로 했다. 표면적인 핵심 목표는 주식 시장이 널뛰기할 때마다 물가 지표까지 덩달아 출렁이는 '착시 현상'을 걷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표 개편에 따라 단기적으로 물가 수치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각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통계적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 주가 널뛸때 물가도 널뛰는 착시 '삭제'
이번 개편으로 산출 방식이 바뀌는 항목은 근원 PCE에 포함되는 △포트폴리오관리·투자자문서비스 △법률서비스 △컴퓨터소프트웨어·액세서리 등 3가지다.
가장 큰 변화는 전체 PCE의 2.11%를 차지하는 포트폴리오관리·투자자문서비스 항목에서 일어난다. 기존 방식은 '수수료 총액'을 잣대로 썼다. 펀드매니저가 똑같은 일을 했음에도 단순히 주가가 올라 자산 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서비스 가격(물가)이 뛰었다고 계산하는 맹점이 있었다.
새로운 방식은 '금융 업종 취업자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업계에 직원이 늘어난 만큼 고객이 받은 서비스의 양도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바꾸면 주식 시장의 거품이 물가로 전이되는 현상이 대폭 줄어든다. 실제로 주가지수(S&P500)가 1%P 오르내릴 때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기존 0.67%P→0.43%P로 축소된다.
● 깜깜이 데이터 대신 '체감형 지표'로
PCE에서 0.82% 비중을 차지하는 법률서비스 항목은 부실한 데이터를 써왔던 문제를 바로잡는다.
기존에는 정부조차 품질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도 않던 '깜깜이' 통계를 억지로 가져다 썼다. 그러다 보니 불과 1년 만에 물가 등락률이 13.5%에서 -0.4%를 오갈 정도로 널뛰기가 심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앞으로는 부동산 계약이나 민사 소송 같은 체감형 법률 비용 데이터를 묶어서 계산한다. 누구나 검증 가능한 탄탄한 데이터를 쓰는 것이다. 기존 지표로 계산하면 올해 법률서비스 비용은 6~9% 수준으로 불안하게 널뛰었지만, 바뀐 방식으로 계산하면 5.4~6.4% 수준으로 좁혀진다. 변동폭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훨씬 안정감을 찾는 것이다.
● USB 빼고 게임·클라우드 담았다
PCE의 1.23% 비중인 컴퓨터 소프트웨어·액세서리 항목은 낡은 기준을 버리고 디지털 소비 생활을 쫓아간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 물가를 잴 때 USB 같은 부품 가격까지 뒤섞여 있어서 오차가 컸다. 게다가 이 항목은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0.035%밖에 안 되는 작은 덩치인데, 근원PCE를 잴 때는 1.2%로 34배나 뻥튀기돼 반영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실제 덩치는 작은데 비중이 과하게 부풀려지다 보니, 좁은 표본이 조금만 흔들려도 전체 지표가 크게 왜곡됐던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실제로 지갑을 여는 '게임 다운로드'나 '클라우드 서비스' 비용을 적용해 현실에 맞게 비중을 재조정한다. 불필요한 잡음을 걷어내고 통계 정확도를 끌어올린 셈이다.
● 뚝 떨어지는 물가 수치…인플레용 '통계 마사지'인가
통계의 정밀도를 높인다는 명분이 뚜렷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묘한 시기에 이뤄지는 '통계 마사지'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내놓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물가 수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을 반영해서 올해 1~7월 PCE 상승률을 계산해보면 기존 방식보다 PCE가 0.12%P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7월 근원 PCE는 소프트웨어(-0.14%P)와 포트폴리오관리(-0.07%P) 항목의 수치가 깎이면서 기존 3.34%→3.15%로 뚜렷하게 둔화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 반등 우려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산출 방식을 바꿔 물가를 소폭 주저앉히는 그림이 만들어진 셈이다. 결국 낮아진 물가 통계가 채권 금리 상승을 억제하고 연준의 금리 인하를 뒷받침하는 명분으로 쓰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2021년 1월~2026년 7월까지의 물가 상승률을 길게 놓고 비교해보면 기존(22.9%)과 신규(23.0%) 방식이 사실상 똑같다. 장기 물가의 큰 흐름 자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요한 국면에서 지표 안정화라는 극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이 단순히 낡은 기준을 고치는 것을 넘어 통화 정책의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