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년 2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반도체주는 오히려 상승했다. 증권가는 향후 미국 장기금리가 안정될지, 높아진 자금조달 비용에도 빅테크가 인공지능(AI) 투자를 유지할지가 반도체주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은 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에서 3.75~4.00%로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 2023년 7월 이후 3년 2개월 만의 인상으로, 표결에 참여한 위원 12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금리 인상은 예상됐지만 향후 경로는 매파적이었다. 점도표는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을 시사했고, 2027년까지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예상한 위원도 8명에 달했다.
뉴욕증시는 혼조세로 반응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21% 하락했지만 나스닥지수는 0.01% 내리는 데 그쳤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오히려 0.63% 올랐다.
국내 증시는 장 초반 강보합을 나타냈다. 코스피는 17일 개장 직후 6800선에 육박하기도 했다. 금리 인상이 예견된 만큼 이미 상당 부분 가격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첫 인상 뒤 장기금리 안정되면 반도체 반등
증권가는 반도체주에 중요한 것은 0.2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상보다 장기금리의 향방이라고 분석한다. 장기금리가 정점을 확인하면 이익 전망에 비해 주가가 크게 낮아진 반도체주가 반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증권이 과거 연준의 점진적인 금리 인상 사례를 분석한 결과 S&P500과 코스피는 인상 전월과 당월 하락했지만, 인상 2개월 뒤 누적수익률은 각각 평균 3.1%와 4.6%를 기록했다. 첫 인상 이후 3개월 이상 금리가 동결됐던 1997년 3월과 2015년 12월이 분석 대상이다.
하나증권은 금리 상승 과정에서 주가가 크게 할인됐지만 내년까지 높은 이익 증가율을 유지할 종목으로 SK하이닉스와 이수페타시스 등을 제시했다.
하나증권이 산출한 SK하이닉스의 할인율은 연초 16.7%에서 9월 33.7%로 상승했다. 주가를 12개월 예상이익으로 나눈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로 환산하면 약 6배에서 3배로 낮아진 셈이다. 이익 전망에 비해 주가에 적용된 평가가 크게 낮아졌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도 25~50bp의 금리 인상이 빅테크의 AI 투자를 중단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AI 인프라와 반도체 관련 종목 상당수가 시장 평균보다 낮은 멀티플에 거래되고 있어 최근 조정은 일시적인 공백이라는 진단이다.
과거 7차례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S&P500은 첫 인상 후 3개월 동안 평균 2% 하락했지만, 12개월 뒤에는 평균 9% 상승했다. 업종별로도 첫 인상 이후 3개월 평균 수익률은 에너지와 기술주가 가장 높았다.
◇현금 투자에서 차입 투자로…AI 호황의 복병
문제는 고금리가 빅테크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AI 투자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다. AI 투자를 주도하는 하이퍼스케일러는 높은 현금창출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 등 설비투자가 급증하면서 회사채를 비롯한 외부자금 활용도 확대되고 있다.
키움증권은 미국 10년물 금리 상승이 곧바로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2006년에도 미국 10년물 금리가 5%를 넘어섰지만 기업실적 개선이 이어지면서 증시는 주로 밸류에이션 조정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근 일부 하이퍼스케일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상승한 것은 대규모 AI 투자에 따른 부채와 자금조달 부담을 시장이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자본비용이 상승한 상황에서도 현재의 투자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향후 AI 반도체 사이클의 관건이다.
LS증권은 17일 ‘주식 관점 FOMC 소화: 1H27까지 박스권 전망’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 국내외 주식시장의 하락 위험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LS증권은 “상반기가 하이퍼스케일러의 현금 기반 투자와 그 자금을 매출로 인식할 반도체에 열광했던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AI 인프라 투자가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유동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통화 긴축으로 유동성이 줄어드는 가운데 상반기 주식시장으로 대규모 유입된 자금도 수급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성장세와 높은 금리는 신흥국보다 미국 주식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LS증권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통제 의지를 확인하면서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고 장기금리가 안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내년 상반기까지 주식시장이 박스권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면서 주가 하락 시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을 권고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10년물 금리가 한 달 동안 약 50bp 또는 2주 동안 30bp 이상 오르면 주식시장이 소화하기 어려운 상승 속도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반도체주도 추가적인 밸류에이션 할인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