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 미국 뉴욕에서 3년 연속 대규모 글로벌 기업설명회(IR)를 열고 월가 주요 금융사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나섰다. 국내 금융사 가운데 뉴욕 현지에서 이 같은 글로벌 IR을 단독으로 매년 이어온 곳은 한국투자증권이 유일하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롯데뉴욕팰리스호텔에서 글로벌 금융기관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KIS 나이트 인 뉴욕 2026(KIS Night in New York 2026)'을 개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핌코(PIMCO), JP모간, 칼라일, 누버거버먼, 맨그룹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IB), 사모펀드(PEF)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150여명이 참석했다. 2024년 첫 개최 당시 120여명 수준이던 참석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불어나고 있다.
KIS 나이트는 한국투자증권이 해외 금융 파트너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현지 네트워크를 다지기 위해 직접 기획해 여는 IR 행사다. 2024년 뉴욕에서 출발한 뒤 홍콩으로 무대를 넓혔고, 지금은 회사를 대표하는 글로벌 네트워킹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 피델리티·핌코·칼라일과 잇단 MOU…"상품 판매 수준 넘어 공동 운용"
올해 KIS 나이트는 참석 규모보다 글로벌 금융사들과의 사업 확장이 두드러졌다. 한국투자증권은 이에 앞서 지난 7일 피델리티, 9일 핌코 및 칼라일과 각각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이들 금융사와 해외 금융상품 공급을 늘리는 것은 물론 공동투자, 리서치 콘텐츠 제공 등으로 협력의 폭을 넓히는 것이 골자다.
피델리티와는 글로벌 리서치 보고서를 한국에 제공하고 공동 상품 개발과 공동 투자 기회를 모색한다. 핌코와는 채권 및 자산관리 솔루션 분야에서 협력할 예정이며, 칼라일과는 기존 대체투자 협력을 자금 위탁운용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9일 하비 슈워츠 칼라일그룹 CEO와 뉴욕에서 직접 만나 2023년부터 이어온 양사 파트너십의 협력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현재 피델리티와 가칭 '한·중·미 펀드'도 설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자산은 피델리티가, 한국 자산은 계열사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맡는 구조다. 김 사장은 이날 국내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상품을 만들고 같이 운용하는 단계까지 협력이 진화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글로벌 금융사와 협력하는 것은 그들의 상품을 가져다 국내에 파는 것이 아니다"라며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딜을 발굴하고 투자기회에 참여하며, 리서치와 리테일·온라인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토털 글로벌 비즈니스 밸류체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서 이들 글로벌 금융기관의 리서치 리포트를 볼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글로벌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 월가에 여전한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반도체·방산에도 높은 관심
김 사장은 미국 시장에서 주목하는 핵심 협력 분야로 인공지능(AI)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사업을 꼽았다. 그는 "글로벌 금융사들과 이야기해보면 데이터센터 얘기를 많이 한다"며 "데이터센터 파이낸싱을 같이 하자는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 이어 "AI가 현실화되려면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전력과 용수뿐 아니라 시설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한국의 반도체와 방위산업을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업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데 대한 대응 전략도 밝혔다. 김 사장은 "국채 금리 변동성에 대응해 듀레이션을 조정하고 포트폴리오 헤지를 활용하는 등 운용전략을 다양화해야 한다"며 "종합투자계좌(IMA) 인가를 계기로 현금화가 용이하면서도 금리 수익을 낼 수 있는 글로벌 크레디트·채권 상품을 글로벌 운용사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리테일 상품과 관련해서는 "최근 금리가 올라가면서 국내 고객들이 월지급식 상품을 선호한다"며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받는 상품뿐 아니라 매달 배당이나 이자 형태로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중앙은행(Fed)의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금리가 변화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며 "현지 거물급 인사들도 확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 월가 파트너 끌어안은 한투…"아시아 대표 증권사 도약" 구상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글로벌 금융사 수장들도 협력 확대 의지를 밝혔다. 조지 워커 누버거버먼 회장 겸 CEO는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몇 년간 보여준 적극적인 글로벌 투자 행보는 매우 인상적"이라며 "대체투자에 이어 우량 리테일 상품 공급까지 협력을 확대해 양사의 글로벌 성장을 함께 이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체투자 노하우를 한국 개인투자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돼 기대가 크다"고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이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 공을 들이는 것은 국내 자산관리(WM) 시장에서 경쟁사와 차별화된 투자 기회를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고객 기반과 WM 노하우를, 글로벌 금융사는 해외 투자상품과 운용 역량을 각각 내놓는 상호보완적 협력 틀을 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2조 1,7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1%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1조 7,311억원으로 68.9% 늘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취임 이후 '글로벌화'를 경영 화두로 내건 김 사장은 "과거에는 우리가 해외 금융사를 찾아가 협력을 요청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기관들이 먼저 공동 사업을 제안해 오는 단계로 발전했다"며 "사업은 결국 사람과 신뢰다. 매우 많은 딜이 들어오고 많은 협력사가 한국을 방문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한국의 증권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함께 사업하고 싶은 필수 파트너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종합금융투자회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