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규칙도 보호장구도 없이 맨몸으로 맞붙는 이른바 '야차룰'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1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야차룰은 규칙이나 보호장구 없이 맞붙어 싸우는 방식을 가리키는 은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 등에서는 쌍방이 합의해 싸운 것이니 다쳐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치 합법적인 행위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아파트 동대표들이 각서를 쓰고 싸우다 한 명이 숨진 사건에서 가해자가 폭행치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은 것도, 야차룰로 싸우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야차룰이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면해주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유튜브에 '야차룰'을 검색하면 쉽게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번지는 분위기다. 초·중·고교생 가리지 않고 "야차 뜨자"며 싸움을 제안하거나 이를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학교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싸움은 주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지하 주차장이나 골목길 등에서 벌어지며, 현장에는 격투 당사자와 이를 지켜보는 또래들뿐이어서 위험을 말리기는커녕 방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야차룰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끌면서 상대를 더 많이 때린 쪽이 오히려 영웅시되는 왜곡된 현상까지 나타난다.
야차룰에는 흔히 '다쳐도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이 탓에 크게 다쳐도 약속을 어겼다는 비난이 두려워 선뜻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체격 차이가 크게 나더라도 '합의'를 이유로 격투가 성사되는데, 신체적으로 열세인 학생에게는 사실상 일방적인 폭행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싸우는 장면을 촬영해 유포하거나 판매하는 사례까지 확인된다.
경찰청과 교육부는 '야차룰'을 신종 학교폭력 유형으로 규정하고, 지난달 '야차룰 경보'(신종 유형 발생경보 제11호)를 발령해 일선 학교에 전파했다.
야차룰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사이에서도 폭력을 정당화하고 상대에게 싸움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청주에서는 20대 여성이 10대 2명과의 싸움을 강요당한 끝에 격투 도중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여성과 10대들 모두 애초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다른 이들로부터 야차룰 방식의 싸움을 강요당한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아파트 동대표들끼리 주먹다짐을 벌여 1명이 숨진 사건에서도, 야차룰과 유사하게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가 등장했다.
야차룰로 싸우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은, 아파트 동대표 간 싸움에서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가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퍼졌다.
두 동대표는 회의 중 말다툼을 벌인 끝에 '앞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각서를 쓰고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이 급성심장사로 숨졌다. 이후 가해자는 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이 각서 자체가 무죄 선고의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었다.
폭행치사죄가 성립하려면 폭행과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 그리고 폭행 당시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가 함께 인정돼야 하는데, 재판부는 이 가운데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심 판결문의 폭행치사 무죄 부분에는 피해자가 먼저 피고인에게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 작성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하지만 이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 중 하나로 제시됐을 뿐, 그 자체가 무죄의 직접적 사유는 아니었다. 반면 주먹과 발 등으로 폭행한 사실 자체는 인정돼 폭행죄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형법 24조는 피해자가 자신의 법익 침해에 승낙한 경우 일정한 범위에서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은 그 승낙 자체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1985년,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승낙 아래 잡귀를 물리치겠다며 피해자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에서 "형법 제24조의 규정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되는 소위 피해자의 승낙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녀야 한다고 풀이해야 할 것"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서로 싸우기로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 폭행·상해의 형사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상해죄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형사처벌할 수 없는 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처벌을 원치 않았다는 사정은 양형에서 유리하게 참작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형사 책임을 면제받는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
이선민 덕수 변호사는 "'야차룰', 즉 상호 합의는 법률상 위법성을 조각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폭행·상해 행위가 일어났을 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전 면허가 될 수 없다"며 "사회상규에 반하는 신체 침해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승낙이 법적 면책사유가 될 수 없고, 상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합의 여부와 별개로 상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