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 세지는데…호르무즈 파병 놓고 정부 '고심'

입력 2026-09-07 13:38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파병 준비를 구체화하던 정부가 최근 다시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미국과 이란 간 무력충돌이 다시 격화한 데다 여당 내부에서도 파병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파병 문제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의 조속한 회복과 중동의 평화·안정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을 미측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현재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파병 문제를 적절한 시점에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관련 논의가 상당 부분 진척됐음을 시사했으나, 최근에는 다시 결정된 사안이 없다는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 내 미국과 이란 간 무력충돌이 재격화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동안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미-이란 간 무력 충돌은 지난달 30일 미군이 약 한 달 만에 공습에 나서면서 재점화했고, 지난 주말엔 양측이 군함과 유조선 등을 겨냥한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보복전 수위가 격화했다.

정부는 그동안 분쟁 중단 등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화를 전제로 파병을 준비해왔지만 현지 상황이 급변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방부가 파병 준비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권과 충분한 조율 없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여당 내부에서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용납할 수 없다"며 파병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도 나왔고, 범여권 진보 정당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파병 반대 움직임을 보인다.

다만 정부로서는 호르무즈 파병이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나 핵추진잠수함 핵연료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협상이 필요한 한미 현안과 직결돼 있기에 국내 여론 환경만 놓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한국이 미국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동맹국의 기여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17일엔 한 해에 단 두 번 하는 전구급 한미연합연습 규모를 반토막 내도록 지시하기까지 했고, 이후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준비를 구체화했다.

정부는 현재 "실질적 기여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과 전략적 소통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를 세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8일 예정된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호르무즈 파병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군 당국은 현지 상황 변화 등을 반영해 실제 파병이 결정될 경우 투입할 수 있는 군사적 자산 후보군도 다시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에는 유류와 탄약 등 군수품을 지원할 수 있는 해군 군수지원함이 우선적으로 거론됐지만, 군수지원함을 운용하려면 100여명의 승조원이 필요한 데다 함정의 노후도 등을 고려해 현재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넓은 해역을 감시하고 잠수함과 수상함을 탐지·타격할 수 있는 해상초계기와 폭발물처리반(EOD), 무인 기뢰 탐색·제거 장치 등이 파병 리스트로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