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친구들 김현수 이사장, 사재로 자살예방 연구기금 시작…“연구가 부족하다면 내가 먼저”

입력 2026-09-02 10:42
자살유족이자 30여 년 사회의 아픈 곳을 찾아온 정신과 의사, 사재 1천만 원 출연 학교 밖 청소년 위한 학교·일터 설립 이어 세월호 유족·형편 어려운 대학생 지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사단법인 별의친구들 이사장(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이 자살예방 연구와 현장 실천을 활성화하기 위해 사재 1천만 원을 출연해 자살예방 연구기금을 시작했다.

기부금 전액은 한국 자살예방연구실천협회(KASPRA)가 진행한 ‘2026 자살예방 정책&실천 공모전’의 연구·실천 지원금으로 사용된다. 정신건강 전문가 중심의 연구를 넘어 인문사회과학과 지역사회, 시민의 실천까지 자살예방 연구의 범위를 넓혀보자는 취지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너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만약 하나의 질병으로 이만큼 많은 사람이 계속 사망한다면 국가와 기업, 수많은 연구자들이 원인을 밝히고 해법을 찾기 위해 달려들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자살은 여전히 몇몇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자살은 정신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달려들어 연구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비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며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 자신도 가족을 자살로 잃은 자살유족이다. 그는 2015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맡았고,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내며 고위험군과 유족 지원, 지역사회 자살예방체계 구축 등에 참여했다. 현재는 KASPRA 상임대표로 활동하며 자살을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선택에 국한하지 않고 빈곤과 부채, 노동, 고립, 관계 단절, 지역사회의 안전망 등 사회적 조건과 함께 다루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70명이 만든 선언, 한 사람의 기부로 연구까지

이번 연구기금은 지난해 KASPRA가 개최한 자살예방 ‘액션톤(Action-thon)’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실제 연구와 실천으로 연결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 전문가와 자살유족, 시민 등 약 70명이 5시간에 걸쳐 토론하고 ‘2025 자살예방 실천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에는 ▲자살을 정신질환의 결과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재난의 관점에서도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 ▲특정 고위험집단을 넘어서는 보편적·구조적 안전망 강화 ▲유족과 당사자의 목소리 반영 ▲전화·입원 중심 위기대응을 넘어선 상담·사례관리 개선 ▲자살예방정책과 지역 돌봄 및 사회안전망의 제도적 연결 ▲‘죽음을 막는 것’을 넘어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의제 설정 등이 담겼다. 김 교수는 당시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고, 영혼을 갈아넣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에 관한 뜨거운 토론이었다”고 말했다.



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연구가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에 김 교수는 자신의 돈을 내놓았다.

첫 기금 1천만 원은 ▲자살예방 문화·캠페인 연구 300만 원 ▲자살예방 실천 400만 원 ▲인문사회과학 및 복합·융합학문 300만 원으로 나눠 지원된다.

공모 결과 청소년 자해·자살에 대응하는 실무자 역량강화 모델, 편의점·카페·부동산 등 일상의 공간을 주민의 안부를 확인하는 접점으로 활용하는 지역사회 자살예방 모델, 한국인의 자살을 생애·사회·생체의 ‘세 개의 시계’ 불일치로 분석하는 인문사회과학 연구 등 3개 과제가 선정됐다.

김 교수는 “자살예방은 정신과 의사나 몇몇 전문가만 연구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사회학자도, 교사도, 사회복지사도, 디자이너도, 유족도, 시민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이 왜 죽음으로 내몰리는가’를 질문하고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학교가 없을 때 학교를 만들고, 이번에는 연구기금을

김 교수에게 자신의 돈을 먼저 내놓아 필요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2년 김천소년교도소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며 빈곤과 폭력, 방임과 돌봄의 부재 속에 놓인 청소년들을 만난 그는 이후 학교와 사회에서 밀려난 청소년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정서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치료와 교육으로 함께 지원하는 교육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김 교수는 2002년 동료들과 사재 1억5천만 원을 들여 대안학교 ‘별’을 설립했다. 현재의 성장학교 별이다. 2004년에는 안정적인 교육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 건물을 매입했지만 학교 입주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약 6개월 만에 건물을 처분하면서 큰 경제적 손실을 떠안았다. 이후에도 진료와 강의, 저술을 통해 얻은 개인소득을 학교 운영에 투입하고 대출을 갚으며 학교를 이어갔다. 2021년 언론보도 당시 학교 운영 과정에서 진 은행 빚만 5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이 청년이 된 뒤에는 다시 갈 곳이 문제였다. 김 교수와 별의친구들은 청년을 위한 배움터를 만들고 카페와 제과, 출판 등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마련하며 지원을 성인기까지 확장했다. 별의친구들은 현재 청소년 대안교육에서 청년교육, 직업훈련과 일경험까지 이어지는 지원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김 교수의 사재 출연은 자신이 만든 기관에만 머물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유가족을 위한 기부를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대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사재 1천만 원을 기부했다.



별의친구들 자체 집계에 따르면 김 교수가 지난 24년간 교육·복지·정신건강 분야 공익활동을 위해 개인적으로 출연하거나 부담한 금액은 누적 15억 원 이상이다.

노숙인과 재난 현장에서도 활동을 이어왔다. 김 교수는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영등포 보현의집에서 노숙인 진료를 이어가 2012년 서울시 표창을 받았으며,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장을 맡아 피해자와 유가족의 회복을 지원했다. 이후에도 안산온마음센터장 등을 맡아 재난 이후의 장기적인 정신건강 회복을 지원해왔다. 이러한 활동과 경력은 별의친구들 공적자료에도 정리돼 있다.

▼ “1천만 원이 다음 연구를 부르는 종잣돈 되길”

김 교수는 이번 기금이 일회성 지원에 머무르기보다 자살예방 연구에 더 다양한 학문과 시민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1천만 원은 큰 연구기금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시작해야 다음 사람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돈으로 시작된 연구가 또 다른 연구를 부르고, 더 많은 사람이 기금을 보태고, 결국 실제 사람을 살리는 정책과 지역사회의 변화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예방의 목표는 단순히 죽음을 막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 살아보고 싶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연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모전 선정 과제는 오는 9월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2026 KASPRA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올해 학술대회는 ‘빚으로 죽음에 내몰리지 않는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청년 부채와 정신건강, 채무와 자살위험, 지역사회의 예방적 개입과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 등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