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골프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입력 2026-09-01 14:12
수정 2026-09-01 16:49
"OB 난 공은 페어웨이로 돌아오지 않아, 다음 샷 남아 있다"


골퍼들은 라운딩 전날의 기분을 종종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 같다’고 표현한다. 일찍 자야 하는데 괜히 잠은 잘 오지 않고, 날씨를 다시 확인하고, 머릿속으로는 벌써 필드에 서 있다. 몇 시간씩 걸으며 작은 공 하나를 찾아 풀숲을 헤매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스윙에 속상해하면서도 다음 라운딩을 기다린다. 잔디만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두근하다. 이런 ‘두근두근’에는 자율신경계도 관여한다.

기대되는 일을 앞두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몸은 활동을 준비하는 각성 상태에 들어간다. 심박수와 호흡 등이 달라지고 주의가 또렷해진다. 적당한 각성은 집중과 수행을 돕는다. 소풍 전날의 설렘처럼 골프를 기다리는 긴장감은 즐거움의 일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골프는 실제로 정신건강에도 좋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스코어에 지나치게 진심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운동이 우울과 불안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운동은 신경가소성과 관련된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BDNF)’의 변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인지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습관으로도 권장된다. 골프는 여기에 야외활동과 사회적 교류까지 더해진다. 몸뿐 아니라 뇌와 마음도 제법 바쁘게 움직이는 운동인 셈이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에서는 이미 끝난 일을 계속 곱씹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를 집에 돌아와서도 되새기지만, 골프장에서는 OB가 나도 “다음 홀에서 잘 치면 되죠” 하고 금세 털어내는 분이 있다. 이런 분에게 골프는 일상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는 좋은 취미가 된다. 정반대인 분도 있다. 일이나 인간관계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데 유독 골프만 치러 가면 마음이 힘들어진다.

“연습장에서는 잘 맞거든요. 그런데 필드만 나가면 이상해요.”

연습도 많이 했는데 라운딩에서는 뒤땅이 나고 공은 OB 구역으로 날아간다. 한번 실수하면 ‘오늘 또 안 되는 날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다음 샷에서는 ‘이번에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몸에는 점점 힘이 들어간다. 코치는 계속 힘을 빼라고 한다. ‘내가 뭐 그거 모르나.’ 그러다 어느 순간 이야기한다.

“저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아요.”

여기에는 수행불안(performance anxiety)도 관여할 수 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각성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심박수와 호흡이 변하고 근육의 긴장도 높아진다. 주의 역시 지금 해야 할 동작보다 ‘또 실수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나 결과에 붙잡히기 쉬워진다.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 단순한 기분만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충분히 연습한 동작은 하나하나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면 오히려 평소 자연스럽게 하던 동작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시작한다.

‘백스윙이 너무 빠른가?’ ‘머리가 들리면 안 되는데.’

잘하려고 애쓸수록 역설적으로 몸은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압박 상황에서 평소 잘하던 수행이 떨어지는 것을 ‘choking under pressure’라고 설명한다. 지나친 자기감시와 불안이 평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던 동작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스윙에 영향을 준다’는 경험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골퍼들에게는 재미있는 경험이 하나 더 있다. 하루 종일 뒤땅과 OB에 시달리다가 이상하게 18홀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공이 잘 맞는다. “이게 왜 이제 맞아?” 싶은 멋진 샷이 마지막에 나온다. 우스갯소리로 이를 ‘또 오세요 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지막 홀에 왔다고 갑자기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라운딩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결과에 대한 압박이 줄면서 지나치게 높았던 각성과 자신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마음도 느슨해질 수 있다. 하루 종일 “힘 빼세요”라는 말을 들어도 빠지지 않던 힘이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빠지는 것이다.

‘또 오세요 샷’은 단순히 다음 예약을 부르는 골프장의 마술이 아니라, 잘하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을 때 오히려 몸이 평소의 움직임을 되찾는 역설인지도 모른다.

골프는 이 점에서 참 독특하다. 공은 가만히 있다. 상대가 내 공을 빼앗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다. 앞선 실수를 떠올리고, 다음 실수를 걱정하고, 동반자의 샷과 비교한다. 좋았던 열 번의 샷보다 망친 한 번의 샷이 오래 남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골프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실험실인지도 모른다. OB가 났을 때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지, ‘아깝네, 다음 홀에서 다시 해보지 뭐’ 하고 넘어가는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순간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취미가 반드시 하는 내내 기분 좋은 활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에도 지나치게 붙잡히지 않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골프는 꽤 괜찮은 마음 연습장이다. 18홀을 도는 동안 우리는 스윙뿐 아니라 적당히 긴장하고, 다시 이완하고, 지나간 실수를 놓아주는 연습도 함께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린 위의 작은 명상 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 “골프가 정신건강에 좋은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골프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라운딩에서 공 하나가 숲으로 사라졌다면 이것 하나쯤은 기억해도 좋겠다.

‘이미 OB가 난 공을 계속 바라본다고 페어웨이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음 샷은 아직 남아 있다.’

<자문>

김기원 가야삼성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 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이미지 생성 챗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