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잭슨홀 연설에서 물가 우려를 전면에 내세우며 취임 후 가장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워시 의장은 중앙은행이 향후 정책에 대한 공개 발언을 줄여야 한다며 '조용한 연준'을 표방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책 판단의 기준을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시장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그간 구체적인 통화정책 방향 언급을 꺼려온 워시 의장이 이번에는 금리 판단의 기준을 한층 명확하게 밝혔다는 평가가 시장에서 우세하다.
워시 의장은 과거 연준 이사 시절부터 인플레이션 경계와 통화긴축 필요성을 강조해온 대표적 매파 인사로 꼽혀왔다. 그럼에도 지난 5월 의장에 취임한 뒤로는 자신의 판단 기준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전날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기준을 이전보다 선명하게 드러냈다.
워시 의장은 "나의 기준은 이렇다. 기조적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해 분명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겐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 금리는 연준의 양대 책무 달성을 위한 주된 수단"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이 둔화하지 않으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세부 지표에 대한 판단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7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한 점 등을 거론하며 "수치들이 더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4%를 기록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인플레이션이 우리 목표치인 2%를 웃돌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시장이 원하던 명시적인 금리 경로 약속은 피하면서도, 어떤 조건에서 정책 대응에 나설지에 대한 '기준선'만큼은 분명히 그은 것으로 해석됐다.
WSJ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결의를 가장 강력하게 표명했으며, 연준이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설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씨티그룹의 네이선 시츠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워시 의장의 연설 뒤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이제 워시 의장이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확실히 더 잘 알게 됐고, 이는 매우 유용하고 매우 건설적"이라며 "그의 진단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7월 기자회견 직후의 상황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발언이 실제 신뢰로 이어지려면 결국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디티야 바브 미국 경제조사 책임자는 "이제 8월 고용과 물가 지표가 매우 약하지 않은 한 9월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할 책임은 워시에게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그는 오늘 얻은 신뢰를 아마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다음 달 15∼16일 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여기에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으로 부딪힐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워시 의장이 11월 중간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하지 않을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며, 연준과 백악관이 '충돌 코스'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워시는 자신의 목표와 의도에 관해 명확한 선을 그었다"며 "이는 경제지표나 그 결과와 관계없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와 직접 충돌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