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마이너스 성장, 여기에 전쟁까지 겹친 이란의 화폐 가치가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른바 '경제적 D-데이(economic D-Day)'라 칭한 새로운 대(對)이란 제재 발표를 앞두고 있어 환율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4일(현지시간) 비공식 외환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이란 리알화는 달러당 202만 리알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란 중앙은행이 고시한 공식 환율은 달러당 약 150만 리알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이란 국민은 비공식 시장 환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란 경제는 수십 년간 이어진 국제 사회의 제재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그리고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 간의 극심한 격차로 고통받아 왔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부터 계속됐던 경제적 위기에 전쟁이 더 큰 타격을 입히면서, 기업과 가계는 물론 국가 재정까지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교전은 줄었지만 이들은 계속 경제적 대치 상태에 갇힌 상태다.
이란의 경제 붕괴 속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으로부터 어떠한 양보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란은 전쟁 발발 전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5분의 1이 자유롭게 오가던 핵심 수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여전히 굳게 쥐고 있다.
미국은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핵개발 포기 등을 요구하지만 이란은 생존의 열쇠인 호르무즈 해협을 섣불리 내줄 의향이 없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란과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이란과 계속 거래하는 국가들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포함해 기존 조치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를 이날 발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베선트 장관은 23일(현지시간) '이란에 경제적 D-데이가 오고 있다'는 제목의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이란을 지원하는 국가는 '국제적 왕따'(global pariah)로 만들어버리겠다며 제3국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이란의 금융 거점 역할을 해온 아랍에미리트(UAE)가 최근 이란과 모든 무역 및 금융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 어느 수준으로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란이 걸프국들을 자국과 공동 운명체로 인식하도록 하는 물귀신 작전을 쓸 가능성을 거론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 싱크탱크 부르스 앤 바자 재단의 에스판디아르 바트망겔리드 최고경영자는 "이란은 경제적 고립 때문에 UAE나 이라크 등 주변국에 더 의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베선트 장관의 강경 발언이 나온 직후, 이란 강경파인 모흐센 레자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위원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미국의 새로운 경제 조치에 동조하는 국가들의 지원을 전쟁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강력히 맞섰다.
이란은 그동안 호르무즈 해협의 또 다른 연안국인 오만과 해협 공동 관리 계획에 대한 협상을 진행해 최종 합의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만 외무장관이 새로운 회담을 위해 오는 25일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