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현직 장관의 남편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고위층 인사가 낸 교통사고로 10대 여학생이 숨졌는데도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 항의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19일(현지시간) AFP·로이터 통신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사건은 작년 5월 30일 하노이 도심에서 벌어졌다. 응우옌 시 끄엉(64) 전 의원이 몰던 BMW X3 스포츠유틸리티차(SUV)가 고속으로 달리다 갑자기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아버지와 18세 딸이 함께 타고 있던 오토바이와 정면 충돌했다.
2011∼2021년 국회의원을 지낸 끄엉 전 의원의 부인은 람 티 프엉 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이 사고로 고교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던 딸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열흘 뒤 숨졌다. 당시 하노이 경찰이 수사를 맡았지만, 최초 사고 발생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은 끊긴 채였다.
1년여 간 묻혀 있던 사건이 다시 불거진 건 약 열흘 전부터다. 스레드 등 소셜미디어에서 가해자 이름을 딴 '#NguyenSyCuong', 차량 브랜드를 지칭한 '#BMW' 등의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 수백만 건이 10∼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
네티즌들은 숨진 소녀를 추모하며 수사 내용 공개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고, 사고 현장 가로수에는 주로 마스크를 쓴 젊은이들이 바친 추모의 꽃이 쌓였다. 구글 지도 이용자들은 이 나무에 '정의의 나무'(Tree of Justice)라는 위치 표시를 붙이기도 했다.
항의 여론이 확산하자 하노이 경찰은 지난 17일 관영 VTV 방송을 통해 끄엉 전 의원의 도로교통법 위반 사실은 확인됐지만, 희생자 가족의 고소 취하 등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끄엉 전 의원이 "자기 과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태 수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며, 피해자 가족도 이를 받아들여 형사 기소 면제 요청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담당 검사도 방송에서 그가 유효한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었고 음주운전 상태도 아니었으며 기소 면제 요건을 충족했다고 말했다.
얼굴을 가린 채 VTV 인터뷰에 응한 희생자의 아버지는 "이번 사건과 우리 가족에게 관심을 보낸 온라인 커뮤니티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도 "하지만 이제 이 일은 과거의 일이 됐으며, 모든 문제는 수사 당국에 의해 명확히 해결됐다"고 밝혔다.
경찰이 속한 공안부는 이번 사건을 둘러싼 온라인 여론에 대해 방송에서 "적대 세력, 반동분자,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불안과 소요를 조장하려는 매우 위험한 음모와 의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VTV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현지 사회운동가 응우옌 호앙 비는 SCMP에 "아마도 1년여간 이어진 침묵이 그들의 인내심을 한계에 다다르게 했을 것"이라면서 "젊은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이 그저 '정의를 믿어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의가 실제로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