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면서 어머니의 수고를 기억하는 날이다.”
이는 원로 교육자 소수(小水) 조한승 선생이 미수(米壽)를 맞아 펴낸 회고록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사랑하며』에 남긴 한 문장이다.
1939년 8월 15일 경기 김포 하성면에서 태어난 조 선생은 지난 15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88년 삶의 궤적과 교육철학을 담은 회고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에게 생일은 자신의 탄생을 축하받는 날만은 아니다.
한여름 자신을 낳느라 고생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는 “생일이면 부모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이 먼저 찾아온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小水 생각 7-생일’에 “생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면서 어머니의 수고를 기억하는 날”이라는 문장으로 압축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은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을 경험하고 전쟁의 폐허를 지나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그의 개인사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시간이 겹쳐 있다.
회고 사이사이 88세의 성찰, ‘小水 생각’
344쪽 분량의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사랑하며』는 한 원로 교육자의 경력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회고록과는 조금 다르다.
삶의 주요 사건과 사람에 대한 회고 사이사이에 짧은 성찰인 ‘小水 생각’을 배치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일을 겪으며 무엇을 배웠는지를 현재의 시선으로 되짚는다.
‘소수’는 조 선생의 호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냇물과 강을 이루듯 ‘한 사람의 작은 가르침도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 선생은 책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배우고 가르치는 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교실과 운동장, 교장실과 문화원, 경로대학과 주례 단상으로 장소는 달라졌지만 결국 자신이 한 일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배우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다고 적었다.
책 제목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사랑하며』도 이 같은 삶의 철학에서 나왔다.
“교육은 한 사람의 먼 훗날을 바라보는 일”
조 선생은 통진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해 교감과 교장을 거쳐 덕신고등학교 교장,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초대 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초대 경기도 교육의원과 제7·8대 김포문화원장, 김포사랑운동본부 초대 이사장 등을 맡으며 활동 영역을 학교 밖으로 넓혔다.
40여 년 교육 현장을 거친 그가 회고록에서 내린 교육에 대한 정의는 간결하다.
“교육은 한 사람의 오늘보다 그 사람의 먼 훗날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날 출판기념회장을 찾은 제자 오정석 예비역 중장의 이야기는 이 문장과 맞닿아 있다.
오 前 육군중장은 약 60년 전 학창 시절 자신에게 웅변의 소질이 있음을 알아본 조 선생이 학교 밖까지 찾아와 지도해줬던 일을 회상했다.
이후 40년간 군인의 길을 걸어 3성 장군에 오른 그는 “자신의 성장에 스승의 가르침이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60년 전 학생이 기억한 것은 ‘교과서 속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봐 준 선생님’이었다.
그는 이날 조 선생을 “작은 거인이자 김포의 큰 바위 얼굴이다”고 표현했다.
“노년은 감사를 더 크게 배우는 시간”
회고록은 교육자의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팔십 후반을 살아가는 조 선생은 그가 바라보는 노년과 세월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小水 생각 83-노년’에는 이렇게 적었다.
“노년은 삶이 작아지는 시간이 아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감사를 더 크게 배우는 시간이다.” 이어 ‘小水 생각 84-세월’에서는 “세월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 같지만 남겨 주는 것도 많다.
사람을 보는 눈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조 선생은 팔십 후반에도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며 역사를 공부하고 글을 쓴다.
그는 노년을 단순히 인생의 황혼으로 보지 않는다.
“젊음이 힘과 열정의 시대라면 노년은 성찰과 나눔의 시대”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회고록을 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39년생인 그의 기억 속에는 해방과 전쟁, 가난했던 시절의 학교와 한국 교육의 성장, 지역사회의 변화가 함께 들어 있다.
개인의 회고가 한 세대의 생활사와 만나는 지점이다.
생일에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조한승 선생의 미수연 및 회고록 출판기념회는 지난 15일 경기 김포 수풀림에서 교육·문화계 인사와 제자, 후배, 지인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1년여 동안 조 선생과 함께 기억을 되짚고 관련 자료를 찾아 회고록을 집필한 곽종규 前김포저널 대표는 이날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하고 완성된 회고록을 조 선생에게 봉정했다.
조 선생은 평생 교사와 교감, 교장, 교육의원, 문화원장, 학장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을 찾은 백발의 제자들은 그를 여전히 ‘선생님’으로 호칭했다.
책 후반 ‘小水 생각 207-삶’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큰 사람이 되려고 살지 않았다. 다만 맡겨진 자리에서 사람을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면 내 인생은 충분히 행복했다.”
자신의 생일에 88년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내놓은 조한승.
그가 생일을 맞아 먼저 기억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였고 긴 회고 끝에 남긴 것은 직함이나 업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사랑하며』
그 제목은 한 권의 회고록을 넘어 한 교육자가 긴 세월을 살아온 방식에 대한 대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