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간 6일 폴리실리콘과 그 파생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조치로 미국 동부시간 12월 4일 0시 1분부터 발효된다.
핵심은 15% 관세가 아니라 함께 도입된 최저수입가격(MIP) 제도다.
품목별로 판매 가격의 하한선을 정해, 이보다 싸게 들여오면 차액 만큼 관세를 물리는 방식이다. 저가 수입품의 가격 경쟁력 자체를 없애는 장치다.
최저 가격은 폴리실리콘 킬로그램당 21달러, 잉곳·웨이퍼 킬로그램당 100달러, 태양광 셀 와트당 0.22달러, 모듈 와트당 0.38달러다.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수입 업자에게는 최저 가격 전액이 관세로 부과된다. 15% 관세는 원료 폴리실리콘을 뺀 파생 상품에 적용된다.
● 관세만으로는 못 막는 중국
현재 미국 내 중국산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가격은 킬로그램당 5달러 안팎이다.
관세 15%를 얹어도 5달러 75센트에 그친다. 같은 기간 북미 폴리실리콘 시세는 25달러, 유럽은 18달러 수준으로 관세만으로는 격차를 좁힐 수 없다.
반면 최저 가격 21달러를 적용하면 중국산은 차액인 16달러를 관세로 부담해야 한다. 실효 부담률은 300%를 넘고 가격은 4배 이상 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서명식에서 "중국이 더는 덤핑하지 못하도록 가격을 정하는 것이고, 미국에서 만들라고 관세를 매기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세계 폴리실리콘 생산능력 점유율이 2005년 50%에서 2024년 2%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배경으로 들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 태양광 셀·모듈에 부과했다가 올해 2월 만료된 세이프가드 관세(무역법 201조)를 대체한다.
당시에는 셀과 모듈만 대상이었지만, 이번에는 최저수입가격을 통해 원료인 폴리실리콘까지 규제 대상에 들어갔다.
● 한화·OCI는 직접 영향권에
국내에서는 OCI홀딩스와 한화솔루션이 직접 영향권에 든다. 두 회사 모두 단기적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유리해지는 이유가 다르다.
OCI홀딩스는 말레이시아 자회사 OCI테라서스에서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을 연 3만5,000톤 생산한다.
중국산이 아닌 데다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을 준수하고 수력 발전으로 생산돼 이미 프리미엄이 붙어 팔린다.
폴리실리콘에는 관세가 붙지 않고, 최저 가격 21달러 제한도 OCI의 경우 해당되지 않는 이유다. 반면 킬로그램당 5달러짜리 중국산은 걸려서 들어올 수 없다.
변수는 웨이퍼다. OCI홀딩스는 지난해 베트남 웨이퍼 공장 지분 65%를 확보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폴리실리콘을 만들어 베트남에서 웨이퍼로 가공한 뒤 미국 등에 파는 구조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非)금지외국기관 요건을 충족해 현지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LTA)을 확대해 왔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028~2029년까지 말레이시아 폴리실리콘과 베트남 웨이퍼는 완전히 솔드아웃 상태"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웨이퍼가 미국 국경을 넘는 순간이다. 15% 관세에, 킬로그램당 100달러 최저 가격이 적용된다.
당초 이 웨이퍼는 텍사스 자회사 미션솔라에너지의 셀 공장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OCI홀딩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태양광 정책 변화를 이유로 2억6,5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잠정 연기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 공장을 짓는 대신,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서 만들어 미국에 파는 구조를 굳혔는데 이번 조치가 정확히 길목에 관세를 세웠다.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조지아주 카터스빌에서 셀 양산을 시작하며 미국 내 수직계열화를 마쳤다.
현지 생산능력은 잉곳·웨이퍼·셀 각 3.3기가와트, 모듈 8.6기가와트로 북미 최대 규모다.
모듈 최저 가격 와트당 0.38달러가 결정적이다. 현재 미국에 들어오는 수입 모듈은 0.265달러 수준으로, 12월부터는 40% 이상 비싸져야 한다.
미국에서 만드는 한화솔루션 제품은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경쟁 제품 값만 오르는 셈이다.
미국 내에서 태양광 잉곳과 웨이퍼를 갖춘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다만 모듈 생산능력이 셀을 5기가와트 가량 웃돌아 나머지는 외부에서 들여와야 한다. 미국 공장에서 쓰는 폴리실리콘도 전량 말레이시아산이다.
업계에서는 그래도 모듈 값이 오르는 폭이 더 커 순효과는 플러스로 보고 있다.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도 2027년 8억7,900만달러, 2029년 11억달러까지 늘 전망이다.
● '한국 15% 상한'은 착시다
포고문은 한국을 '무역협정 파트너'로 분류해 232조 관세와 기존 일반 관세를 합산한 세율이 15%를 넘지 않도록 상한을 뒀다.
그러나 태양광에서는 이 상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셀과 모듈은 원래 미국 일반 관세가 0%였다. 더할 기존 관세가 없으니 상한이 있어도 15%를 온전히 부담한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명단에 아예 없다. OCI의 폴리실리콘과 웨이퍼가 한국 기업 제품이지만 원산지 기준으로는 상한 밖에 놓인다.
포고문에 담긴 제조환급(drawback) 혜택도 무역협정 파트너국 폴리실리콘만 사용한 제품을 조건으로 걸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사전에 낸 의견은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한화큐셀은 폴리실리콘 관세를 킬로그램당 10달러 수준으로 하고 독일·말레이시아산에 연간 2만톤씩 무관세 쿼터를 달라고 건의했다.
● 당장은 호재지만 부담도 커
포고문은 상무부에 미국 내 폴리실리콘, 파생 제품 생산 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만들 권한도 부여했다.
교역 상대국이 실질적으로 동등한 최저수입가격 제도를 도입할 경우 해당국에 대한 적용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담겼다. 가격 하한제가 다른 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발표 당일 뉴욕 증시에서 미국 태양광 업체 퍼스트솔라와 T1에너지 주가는 급등했다.
특히 퍼스트솔라는 폴리실리콘을 쓰지 않는 박막(CdTe) 방식이어서 이번 조치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다.
다만 미국 스스로 당장은 수입 없이 버티기 어렵다.
태양광 전문 매체 PV테크는 미국의 모듈 생산능력이 국내 폴리실리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약 18기가와트 많다고 분석했다. 어떤 형태로든 완충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이렇게 패널 가격이 오르면 미국 내 태양광 설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은 리스크로 꼽힌다. 단가가 올라도 물량이 빠지면 국내 기업에게 부담이다.
결국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만드느냐'가 이번 조치의 핵심이다. 국내 기업이 당장 유리해진 것은 미국이 아직 스스로 다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