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의 주가가 29일 급락했다. 한껏 높아져있던 시장의 기대치를 밑돈데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추격이 거세지는데 따른 영향이다. SK하이닉스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지형 변화를 짚어본다.
● 60조원대 영업이익, 그러나 싸늘한 시장
SK하이닉스는 2분기 매출액 79조 3187억원, 영업이익 60조 5426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익률은 76%에 달했다.
호실적 발표 이후 주가는 큰 폭(-9.61%)의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증권가의 영업이익 기대치인 64조원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실망 매물을 불러왔다.
시장의 예상이 빗나간 이유는 장기공급계약(LTA)이 빚어낸 역설에 있다. SK하이닉스의 핵심 수익원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프리미엄 제품은 대부분 LTA 방식을 통해 고객에게 공급된다. LTA는 빅테크 같은 핵심 고객들과 연단위 공급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반도체 현물 시세의 폭등을 반영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평균 판매 단가(ASP)가 2분기 35% 이상 치솟았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정해진 가격으로 판매하기로 한 LTA 계약 물량 때문에 실제 ASP 상승률은 30% 수준에 머물렀다. 반도체 가격 폭등이 현재 실적에 100%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단기 실적 미달'이라는 표면적 아쉬움의 이면을 살펴보자. LTA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향후 반도체 불황기가 오더라도 여전히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는 튼튼한 체질로 산업 구조가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장기적 호재이기도 하다.
● AI 수익성 의구심과 경영진의 '말말말'
최근 시장을 강하게 누르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빅테크들의 AI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에 따른 반도체 피크아웃(고점 통과) 공포였다. 최고 실적을 낸 날 주가가 떨어지는 '재료 소멸' 현상은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 직후에도 똑같이 나타났던 고질적인 패턴이다.
이날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실적발표 직후 컨퍼런스콜에서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주력했다.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의 흐름이 AI 투자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동안 대규모로 구축한 AI 인프라의 활용도를 높여 본격적으로 돈을 버는 수익화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과잉 공급 우려에 대해서도 "실제 수요를 꼼꼼히 확인해 올해 설비 투자를 40조원 후반 수준으로 철저히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차세대 제품인 HBM4를 2분기부터 양산하기 시작해 하반기에 물량을 본격적으로 쏟아내겠다"는 계획을 알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 중국 반도체의 도전과 심리전
반도체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외부 충격도 있었다. SK하이닉스 실적 발표 하루 전인 28일 중국 국영기업 '아이성나'가 침지형 노광장비(DUV) 양산에 착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다.
침지형 DUV란 반도체 원판과 렌즈 사이에 물을 채워 넣어 빛을 굴절시킴으로써 미세한 회로를 그려 넣는 장비다. 여기에 중국의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가 같은날 중국 주식 시장에 상장하며 공모가 대비 466%나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막대한 국가 자본을 발판삼아 '국산 장비로 자국산 메모리를 직접 생산한다'는 반도체 자립 서사를 시장에 던진 셈이다. 서방 세계의 수출 제재 의지를 꺾으려는 치밀한 심리전으로도 읽힌다. 이로 인해 28일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0% 이상 폭락하는 충격이 발생했다. 이 여파는 29일까지 이어졌다.
● 중국 반도체, 과도한 공포의 실체
중국의 DUV 양산 선언이 당장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뒤집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성나 DUV 장비의 올해 목표 생산량이 5대에 불과하다. 한 해에 130대이상을 생산하는 ASML과 막대한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고성능 렌즈 등 핵심 부품은 일본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 DUV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제재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방 진영의 추가 제재가 가해지면 공장 가동이 멈출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독립 속도를 앞당기는 '제재의 역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GPU에서 엔비디아 대항마인 화웨이의 어센드910 시리즈로 이를 입증했다.
창신메모리의 상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독점하고 있는 메모리 시장에서의 점유율 경쟁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DUV에서는 국영기업 아이성나를 앞세워 절대강자인 네덜란드 ASML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반도체 전반에서 중국 기업의 도전이 거세지는 점은 분명한 중장기적 위협이다.
실제 중국은 DUV 장비 자립을 2002년 무렵부터 국책과제로 선정해 20년 넘게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만 60조원 이상(3440억 위안)을 투자하기로 한 국가대펀드 3기에서 중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이 범용 반도체로 따라올 수 없는 최신 HBM4 양산을 서두르고, 극자외선(EUV)을 활용한 최첨단 초미세 메모리 공정으로 한발 빠르게 추격에소 도망쳐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