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린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 등을 폐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럽연합(EU) 규정이 19일(현지시간) 시행됐다. 그동안 재고를 대거 소각·매립해온 대형 패션·명품 업체들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조치는 2024년 7월 도입된 EU의 '지속 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따른 것으로, 과잉 생산을 억제하고 섬유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차원이다. 중소기업에는 4년의 유예를 거쳐 2030년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유럽 대기업들은 미판매 제품을 소각·매립하는 대신 할인 매장이나 대체 시장에 재판매하거나 기부해야 한다. 폐기는 제품에 안전 문제가 있거나 파손된 경우,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경우, 자선 단체 등이 인수를 거부한 경우 등 예외적 상황에서만 허용된다. 예외 규정 악용을 막기 위해 기업들은 매년 미판매 재고 규모와 폐기 내역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해야 하고, 관련 기록은 당국 점검에 대비해 5년간 보관해야 한다. 위반 기업에는 각국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규제 배경에는 만만찮은 환경 부담이 있다. 의류 업계는 재고를 보관·분류·수선·재판매하는 비용보다 폐기가 싸게 먹힌다는 이유로 멀쩡한 상품을 버리는 일이 잦아 환경단체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유럽 시장에 나온 전체 의류 중 한 번도 쓰이지 않고 폐기되는 제품이 매년 약 4~9%에 달하며, 이 과정에서 연간 약 560만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dpa통신에 따르면 독일소매협회(HDE)는 할인 매장과 중고 유통 채널을 통한 할인 상품 공급이 늘어 소비자와 환경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슈테펜 겐트 HDE 대표는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의류가 버려지는 일이 줄어들고, 제품의 재판매와 기부가 늘어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브랜드 가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재고를 소각·매립해온 명품 업체들은 이번 규제로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