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그간 국내 증시를 이끌어왔던 대형 반도체주들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 기자, 최근의 대형 반도체주 하락세는 펀더멘털보다 수급 꼬임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요?
<기자>
외국인의 매도세는 반도체 사이클의 붕괴 신호가 아닙니다. 물론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 전망치를 소폭 하향 조정하는 리포트가 나오긴 하지만 분기 60조원 영업이익은 전세계 기업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현재 수급의 진원지는 MSCI 신흥국 지수(EM)입니다. 6월30일 기준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3개 종목의 합산 비중이 MSCI EM 지수 내 30.89%까지 치솟았습니다. 1년 전 13.92%였던 것이 2배 이상 폭증한 겁니다.
'유럽 펀드 규정(UCITS)'은 펀드 내 종목 집중도에 엄격한 제한을 둡니다. 단일 종목을 10% 이상 담을 수 없도록 하고, 5% 이상 비중인 종목들의 합산 비중이 40%를 넘길 수 없도록 합니다. 세 종목이 사실상 UCITS 제한 기준에 도달하면서 기계적인 리밸런싱에 나서고 있는 겁니다. 최근 석달간 국내 증시에서 110조원을 넘게 내다 판 외국인 수급의 근원지입니다.
최근 외신에서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반도체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는 보도가 여럿 나왔습니다. 인베스코의 윌리엄 램 공동대표는 "올해 아시아 펀드에서 삼성전자 비중을 60% 이상 줄이고 기술과 무관한 한국 기업들로 이동시켰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를 '반도체 정점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이들이 파는 동기는 앞서 말씀드린 MSCI EM 내 집중도 규정을 피하기 위한 섹터 로테이션, 즉 순환 매매에 가깝다는 분석입니다.
<앵커>
어제 우리 시장은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진 건가요. 특히 사흘 전 나스닥에 상장한 SK하이닉스 ADR이 주가 폭락의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기자>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가동한 'ADR 차익거래 페어트레이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10일 나스닥에 데뷔한 SK하이닉스 ADR이 공모가(149달러) 대비 12.76% 급등한 168.01달러에 마감했습니다. ADR 10주가 한국 보통주 1주에 해당하죠. 환율을 적용하면 252만원이 됩니다.
헤지펀드들은 나스닥에서 ADR을 매수하는 동시에 서울 코스피 시장에서는 본주를 빌려다 파는 공매도에 나선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ADR 공모가 공시된 6월 24일부터 7월 8일까지 SK하이닉스 대차잔고는 31.4% 폭증했습니다. 이 기간 삼성전자가 11.7% 늘어난 것과 크게 대비됩니다.
외국인은 어제에만 SK하이닉스 주식을 1조4238억원어치 집어 던지며 미국 주식(252만원)과 한국 주식(184만5000원)의 격차, 즉 괴리율을 37%까지 벌려 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시장의 방어 주체가 완전히 붕괴돼 있습니다. 개인은 실탄이 고갈됐죠. 신용융자 잔고가 36조원인데, 예수금은 100조원까지 줄어서 빚과 현금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상황입니다. 연기금은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이 꽉 차서 적극적으로 살 수 없고요. 여기에 주가가 빠지자 레버리지 상품에서 장 마감 직전 기초자산을 기계적으로 던지는 '쇼트 감마'가 발동된 겁니다.
<앵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대목입니다. 상식적으로 싼 걸 사서 비싼 걸 팔아야 이문이 남는 건데, 외국인들은 왜 반대로 프리미엄이 붙은 미국 주식을 사고 싼 한국 주식을 공매도 치는, 거꾸로 된 매매를 한 겁니까?
<기자>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손실을 막기 위한 보험'입니다. 글로벌 펀드들은 세계 AI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 주식을 이번 ADR 상장 때 의무적으로 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스닥에서 주식을 샀는데, 만약 반도체 업황이 꺾여 주가가 폭락하면 펀드는 엄청난 손해를 봅니다. 이 위험을 100% 차단하는 방법이 바로 한국에서 똑같은 가치만큼 SK하이닉스 주식을 공매도, 즉 빌려다 파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주가가 떨어져도 한국 공매도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미국 주식의 손실을 다 메울 수 있습니다. 즉, 미국 주식을 안전하게 들고 있기 위해 한국 주식에 공매도라는 보험을 걸어둔 겁니다.
둘째는 '미국 프리미엄에 대한 확신'입니다. 헤지펀드들은 아무리 똑같은 주식이라도, 전 세계 돈이 몰리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면 20~30%의 웃돈, 즉 프리미엄이 붙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 시장은 앞서 말씀드린 MSCI 비중 규제 때문에 외국인들이 어차피 기계적으로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돈이 몰리는 미국 주식은 사고, 억지로 팔아야만 하는 한국 주식은 공매도를 하는 등 양방향 베팅을 통해 미국 주식이 오를 때도 돈을 벌고 한국 주식이 떨어질 때도 돈을 버는 이중 수익 구조를 완성한 겁니다.
<앵커>
외국인의 공매도 공격에 개인의 방어력까지 취약해진 참사였군요. 그런데 오늘(14일)도 하락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제 물린 물량까지 고려하면 내일이 최대 분수령이 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데 어떻습니까.
<기자>
오늘(14일)이 하락의 끝이길 바라지만, 주식시장의 구조를 뜯어보면 진짜 최대 분수령은 내일인 7월 15일이 될 것으로 시장에선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낙폭이 더 커진다면 반대매매가 계속 쏟아져서 진 바닥을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국내 증시의 신용융자는 담보비율(140%)이 깨지면 하루의 유예기간을 거쳐 그 다음날 아침 동시호가에 강제 청산되는 T+2 결제 구조를 가집니다. 어제 기록한 15.37%라는 역대 최대 폭락으로 담보가 부족해진 무더기 계좌들의 진짜 강제 청산 물량은 오늘이 아니라, 바로 내일(15일) 아침 9시에 하한가 매도로 일제히 쏟아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현재 시세를 보면 공포의 투매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데이마켓에서 하이닉스 ADR은 163달러로 거래되고 있고, 우리 시장의 본주 주가는 191만원까지 내려왔습니다.
미국 ADR 163달러는 환율 1500원을 적용하면 원화로 약 244만원입니다. 본주 가격 191만원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53만원입니다. 괴리율을 계산해보면 약 28%가 나옵니다.
<앵커>
어제 최고점이었던 37%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괴리율이 28%에 달하네요. 이 숫자가 시장에는 어떤 의미를 주는 건가요?
<기자>
'외국인의 공매도 정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ADR과 본주 괴리율이 20% 이하로 수렴해야 비로소 외국인들이 공매도 공격을 멈추고 주식을 되사는 '숏커버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반대매매와 손절 투매가 본주 가격을 191만원까지 너무 빠르게 끌어내리다 보니 아직 괴리율 20% 선에 닿지 못한 겁니다.
지금 시장에서 가장 명심하셔야 할 원칙은 "수급은 재료에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AI 수요는 진짜이고 빅테크의 설비투자 7000억달러는 굳건합니다. SK하이닉스의 현재 PER은 6~7배로 미국 마이크론(13배)의 절반 수준인 역사적 저평가 상태입니다.
진짜 반등은 당분간 쏟아질 강제 청산 매물을 외국인이 숏커버링으로 모두 받아내고, 일별 반대매매 물량이 1000억원 미만으로 떨어지고, 괴리율이 20% 밑으로 안착할 때 시작될 것으로 시장에선 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