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성 패러다임 vs. 미에노 패러다임…사나에노믹스의 선택과 그 결과는?[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6-07-13 13:24


환율 문제로 우리보다 더 고충을 겪는 국가가 일본이다. 구두, 달러 매도, 금리 인상 등을 통해 엔저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레이트 제트 등을 통해 미국과 공조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의 환율정책은 미국과 맞물려 있다. 2차 오일쇼크 이후 총수요 관리 정책인 케인즈언에 익숙했던 미국 경제에 스테그플레이션이 엄습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쌍둥이 적자가 늘어났다. 성장과 재정적자는 공급 중시 경제학인 레이거노믹스로 풀어낼 수 있었다.

문제는 경상수지적자다. 오히려 레이거노믹스의 핵심인 감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입이 늘어 더 확대됏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위험수위를 넘자 궁여지책 속에 마련된 것이 선진 5개국 간 플라자 협정이다. 유일한 목적인 엔고를 유도해 경상수지적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가 된 플라자 협정의 효과는 강력했다. 1985년 9월 260엔대였던 엔·달러 환율이 1995년 4월에는 79엔대까지 급락했다. 엔고의 위력은 당시 일본 경제 3대 상징은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을 무너뜨렸다. 1990년대 들어서는 도저히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에 낀 거품마저 붕괴됐다.



플라자 협정 체결 이후 5년 만에 이번에는 일본 경제에 스테그플레이션이 닥치자 대처 방안을 놓고 대격돌이 발생했다. 경기부터 실려야 한다는 대장성 패러다임과 물가안정을 중시하겠다는 미에노 패러다임 간 충돌이다. 오랜 고민 끝에 후자를 택하는 악수를 두자 경기는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일본 경제가 난맥상을 보이자 구원에 나섰던 것이 미국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IBM,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시스템즈로 상장되는 IT 산업이 성장기에 진입하자 고성장 하에 물가가 안정되는 신경제를 바탕으로 미국은 강달러를 유도하는 루빈 독트린을 추진했다.

자국 통화 평가절하로 수출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수출입 구조가 환율에 민감해 마샬-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 가격탄력성)>1)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루빈 독트린에 따른 엔저 효과가 막 나타날 무렵인 2001년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이 개선됐더라도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 제품에 밀려 일본 경제는 살아나지 못했다.



현재 일본 경제는 1990년 이후 잠재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0.5% 내외까지 떨어졌다. 총공급 면에서 단순생산함수(Y=f(L,K,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를 이용해 복원력을 따져보면 노동 섹터는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가, 자본 섹터는 토빈 q 비율이 1을 밑돌아 생산성이 여전히 낮다. 총요소생산성도 정치권의 부정부패 등으로 사회간접자본(SOC)가 제도라 확충되지 않아 획기적인 구조개혁이 없으면 복원력은 더 떨어질 수 있는 여건이다.

총수요 면에서 항목별 소득 기여도(Y=C+I+G+(X-M), Y:국민소득, C:민간 소비, I:설비투자, G:정부 지출, X-M:순수출)로 저성장의 원인을 살펴보면 일본 경제를 지탱해 왔던 양대 항목인 민간 소비와 순수출의 기여도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항목인 민간 소비는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이 떨어지고 있어 쉽게 회복되기는 어렵다.

국민경제 3면 등가 법칙(생산=분배=지출)으로 총공급과 총수요를 연결하는 각 부문에도 병목 현상이 심하다. 생산과 분배 간에는 SOC 미확충에 따른 전후방 연관효과가 떨어져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분배와 지출 간에는 일본 국민의 높은 저축률에 따라 절약의 역설에 걸린 지 오래됐다. 지출과 생산 면에서는 해외 누수 현상이 의외로 심각하다.

한 마디로 성장과 물가에다 최근에는 국가채무까지 겹쳐 일본 경제 정책은 트릴레마 국면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정책 기조를 변경하거나 같은 정책이라도 자주 내놓으면 부작용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 통화와 환율정책은 현재 장기간 지속된 아베노믹스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채무비율이 위험수위를 넘어서 재정정책 여지도 거의 없다.

급한 끝에 악수를 먼저 둔 것이 통화와 환율정책이다. 3년 전 일본 총리 수난 시대에 먼저 취임한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는 엔저를 저지하기 위해 엔저를 엔고를 돌려놓기 위한 출구전략을 추진했다. 지난 3년 동안 기준금리를 마이너스에서 1%까지 인상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디폴트 위험을 높여 엔화 가치는 달러당 160엔대까지 더 떨어지고 있다.

뒤늦게 중의원 해산이란 초강수 끝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강한 일본, 일본인 우선(Strong Japan, First Japanese)’을 표방하고 강력한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률(g)가 이자율(r)보다 높으면 빚내서 더 써도 된다는 토마스 피케티 공식과 현대통화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얼핏 보면 트럼프노믹스 2.0과 비슷하다. 하지만 국제기채여건 등에서 세계 제1의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통화와 환율정책도 우에다 총재의 엔저 저지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불감원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 나돌 정도로 아베노믹스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추진 여건이 녹록치 않다. 추진기관인 일본은행은 아베 정부 때와 달리 우에다 총재가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저금리를 통한 달러 약세를 추진하는 트럼프 정부와의 충돌도 우려된다.

1985년 플라자 협정처럼 인위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환율전쟁이 발생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제2 플라자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는 시각도 지금은 1차 플라자 협정을 체결할 1985년과는 다르다. 플라자 협정 체결을 주도해야 할 미국 입장에서 최대 무역 적자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처럼 저량(stock)과 유량(flow) 변수에서 성장 장애 요인을 안고 있을 때는 모든 경제 정책은 긴축과 부양의 성격과 관계없이 반짝 효과만 나타나는 캠플 주사에 그친다. 주체적인 면에서 재무성과 일본은행, 스펙트럼 면에서 재정과 통화뿐만 아니라 환율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한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엔화가 결제 수단 못지않게 투자 대상이 되는 뉴노멀 시대에서는 국가채무부터 줄여야 금리를 올리더라도 디폴트 위험부터 줄여야 엔화 가치가 강세가 돨 수 있다. 구조개혁을 포함한 제3의 정책도 모색돼야 한다. 최대 병목 변수인 높은 저축을 소비로 유도하기 위해 ’부(負)의 저축세‘ 도입을 더는 미뤄서는 안된다.

케인스언의 균형재정승수가 1이라는 점을 착안한 간지언 정책도 고려해야 할 때다. 산업연관표(I/O)상 병목 현상은 풀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주식 대중화와 주주 환원율 제고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결국 제3의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가 처한 대내외 여건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엔저 저지를 위한 정책이 엔고를 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가채무속도가 빠르게 증가하는 여건에서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외환 당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