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장의 무게중심이 학습 중심 모델에서 추론 모델로 옮겨가면서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주목받고 있다. 사람처럼 사고하고 답을 내놓는 추론 모델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D램·고대역폭메모리(HBM)만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쌓아둘 낸드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2일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메모리카드·USB용 낸드 범용제품(128Gb 16Gx8 MLC) 평균 가격은 28.8달러로, 지난해 말(5.7달러)의 5배를 넘겼다. 18개월 연속 상승세다. 같은 기간 PC용 D램(DDR4 8Gb 1Gx8)이 2.3배 오른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말 D램의 1.6배 수준이던 낸드 가격은 지난 3월부터 넉 달째 오히려 D램을 앞지르고 있다.
낸드가 AI 시장의 주목받는 건 추론 AI의 작동 방식과 맞닿아 있다. 학습 단계에서 데이터를 펼쳐놓는 '책상'이 D램·HBM이라면, 실시간으로 답을 찾아내는 추론 단계에선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했다 꺼내 쓰는 '책장' 격의 낸드가 관건이 된다. 최신 모델이 환각을 줄이려 외부 자료를 참고하는 검색 증강 생성(RAG) 기술을 기본 적용하는 것도 낸드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저렴한 값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고,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남아 전력 소모가 적다는 장점까지 더해지면서 빅테크들은 데이터센터용 하드디스크(HDD) 대신 낸드 기반 기업용 SSD(eSSD)를 찾고 있다.
낸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시장 규모도 커졌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낸드 시장(매출 기준) 규모는 지난해 730억달러(110조원)에서 올해 3,601억달러(545조원)로 394% 뛰어올랐다. 내년엔 4,892억달러(74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점유율 29%로 1위인 삼성전자(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는 평택 P5·P5-2 팹을 각각 2028년 상반기, 2029년 가동한다. 2위 SK하이닉스(18%)는 청주에 80조원을 들여 차세대 낸드 M17을 짓기로 했는데, 새 낸드 팹 건설은 2017년 M15 이후 약 10년 만이다. 키옥시아(14%)와 마이크론·샌디스크·YMTC(각 13%)도 증설에 뛰어들었다. 특히 중국 YMTC의 추격이 매섭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웨이퍼 기준 생산량을 올해 13.2%, 내년 24.2% 늘릴 계획으로, 주요 업체 중 증가 폭이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