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 빛낸 태극기…'40조 실탄' 쥔 SK하이닉스, 본주 재평가 받을까

입력 2026-07-10 20:51
수정 2026-07-10 21:14
40조 조달…외국기업 美IPO 최대 규모 기관 주문 7배 몰려…글로벌 투자자 접근성 기대↑ "본주→美ADR 전환, 기발행 물량 내에서 신고 없이 가능"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국내 보통주보다 약 3% 높은 가격에 공모되며 현지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인정받았다.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 기업 상장에 수요예측 방식 적용 ADR 중 첫 '프리미엄 프라이싱'까지 달성해 세계 투자자의 뜨거운 관심이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ADR 상장의 의미를 단순한 해외 자금 조달 이상으로 기업 가치가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한편 신주 발행으로 기존 주주의 지분이 일부 희석되고, 미국과 국내 시장 간 주가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SK하이닉스는 10일(현지시간) 미국예탁증서(ADR) 공모가를 주당 149달러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조달 규모는 265억달러, 약 40조원에 달한다.

공모가는 SK하이닉스의 한국 코스피 주가보다 비싸게 매겨졌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보다 0.27% 내린 218만원에 장을 마쳤다. 이날 SK하이닉스는 개장 직후 230만5000원에 거래되기도 했으나 곧 상승분을 반납하고 종일 등락을 반복했다.

공모 대상은 ADR 1억7790만주로, ADS 10주가 국내 보통주 1주에 해당한다. 보통주 기준으로는 신주 1779만주를 발행하는 셈이다.

ADR은 SK하이닉스가 새로 발행한 한국 주식을 미국 내 예탁기관에 담보로 잡고 미국 증시에서 주식과 동일한 효력으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든 증서다. 맡겨진 SK하이닉스 한국 주식 1개가 ADR 증권 10개로 발행된다. ADR 거래는 이날 밤 SK하이닉스의 타종(오프닝 벨) 행사와 함께 시작된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최대 290억달러 조달을 추진했으나, 최근 한국 증시 조정 속에 최종 조달 규모는 265억달러로 정해졌다. 이는 미국 증시 ADR 공모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중국 알리바바가 2014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당시 기록한 250억달러를 넘어 외국 기업의 미국 IPO 가운데서도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 기업까지 포함하면 스페이스X에 이어 2위다.

시세보다 높은 공모가는 글로벌 투자자가 SK하이닉스의 상승 여력을 그만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ADR 상장에 앞선 수요 조사에서 해외 기관투자가의 투자 문의가 빗발쳤다. 500개가 넘는 투자사가 공급 물량의 7배에 달하는 구매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DR 상장후 주가 흐름을 봐야겠지만 이번 ADR 상장은 단순한 해외 거래시장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발행 방식에 있다. ADR은 해외 기업 주식을 미국 증시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증권으로, 미국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에 보다 쉽게 투자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국내에서 삼성전자와 주로 비교됐던 SK하이닉스가 미국 시장에서 마이크론과 비교되면서 고질적인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세계 1위 삼성전자 뒤를 잇는 2위 글로벌 반도체 회사이지만, 세계 3위 마이크론과 비교하면 적정 가치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면 저평가가 크게 해소되고 나스닥 상장으로 나스닥 상장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확대돼 재평가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ADR 상장을 계기로 글로벌 투자자의 접근성이 확대되고, 향후 미국 ADR과 한국 본주의 밸류에이션이 동시에 재평가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1997년 10월 미국에 ADR을 상장한 대만 TSMC도 ADR 상장 이후 ADR과 대만 본주가 함께 재평가되는 흐름을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단기 모멘텀 측면에서 주가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ADR 상장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선반영됐고 호재가 소멸하는 상장 이후에는 오히려 주가 상승 탄력이 둔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ADR과 국내 본주 간의 가격 괴리가 해소되려면 원활한 차익거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본주와 ADR 간 교환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한 행정적 처리가 수반되는 만큼, 즉각적인 차익거래 시스템이 안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미국 ADR이 국내 본주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프리미엄 현상이 장기간 고착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IB) UBS도 SK하이닉스 ADR을 사고 국내 보통주는 매도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UBS는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이 높은 데다 한국 보통주를 ADR로 전환하는 데 제약이 있을 수 있어 ADR이 국내 보통주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실제 공모가가 국내 보통주 환산 가격보다 2.9% 높게 확정되면서 UBS가 제시했던 프리미엄 시나리오는 공모 단계에서 현실화됐다.



다만 SK하이닉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신고서를 보면 SK하이닉스는 두 주식 간 가격 차이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주식을 미국 주식으로 바꾸는 양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F-1)에서 "ADS를 (한국) 보통주로 바꾼다면, 보통주를 예탁해 ADS로 다시 바꿀 수 없을 수도 있다"고 기재했다. 예탁계약에 따라 보통주와 ADS를 상호 전환할 수는 있지만 "ADS로 표시되는 당사 보통주의 총수가 특정 최대치를 넘어설 경우, 예탁기관은 당사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싼 주식을 산 뒤 미국에서 비싸게 팔아 이득을 챙기는 무위험 차익 거래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다.

상장 초기에는 한국과 미국 주가 간에 비정상적인 괴리가 나타날 것이란 관측도 있다. UBS 등은 "미국 주식은 사고 한국 주식은 공매도(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전략이 정석"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당장은 SK하이닉스 ADS를 본주로 전환해야만 그만큼의 물량을 본주에서 ADS로 전환할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로 풀이되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국내 증권가는 첫날 ADR 주가보다 미국과 한국 시장 간 가격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 형성된 프리미엄이 국내 본주로 이어질지, 아니면 차익거래를 통해 빠르게 해소될지가 향후 주가 흐름을 결정할 핵심 변수라는 설명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본주 관점에서는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한데, SKHY가 미국에서 10~20%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과 한국 본주의 목표 멀티플 상승은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가격 차이가 서울 본주의 상승으로 좁혀질 수도 있고, 미국 접근성에 대한 별도 프리미엄으로 남을 수도 있다"면서 "후자의 경우 미국 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보다 두 시장의 가격 차이를 드러내는 변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의 ADR(주식예탁증서)은 10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동부시간) 나스닥에서 'SKHYV'라는 종목 코드로 조건부 거래가 시작된다. 상장 후 호가가 발생하면 시초가가 형성되고 실제 거래도 시작된다. 이때부터 모든 투자자들은 SK하이닉스 ADR을 매매할 수 있다. 13일 정규 거래가 시작되면 종목코드는 SKHY로 변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