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무효화를 암시하는 발언을 해 그 여파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종전 양해각서가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란을 향한 언사는 한층 거칠었다. 그는 "그들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사람들(Sick people)"이라고 했다. 미국 대표단이 이란과 대화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기면서도 "그들과 거래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날 발언은 지난달 17일 종전 양해각서 체결 이후 후속 협상이 공전하는 데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출로 읽힌다. 그간 양국 협상단은 스위스 고위급·실무 회담, 카타르 도하 간접 회담을 진행했지만 양해각서 이행을 둘러싼 이견만 확인했을 뿐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란은 종전 최종합의의 전제로 양해각서 제1조(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 즉각 영구 종료), 제4조(해상 봉쇄 해제와 이란 근처에서 군대 철수), 제5조(호르무즈 해협 개방), 제10조(이란 석유 수출 허가 발급), 제11조(이란 동결 자산 해제)의 충실한 이행을 요구해왔다. 미국은 이를 합의 외적인 이슈를 연계하는 지연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란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을 두고 제1조 위반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제5조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자국에 부여했다는 논리로 자신들이 정한 항로를 벗어난 선박을 공격해왔다. 하메네이 장례식 와중에 벌어진 이번 무력 충돌 역시 이런 논리에 기반한 이란의 유조선 공격이 도화선이었다.
장례식으로 후속 협상이 사실상 멈춘 사이 60일로 명시된 협상 기간의 3분의 1인 20일이 흘렀고, 이 와중에 무력 충돌까지 터지자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재무부가 양해각서에 명시된 이란산 원유 판매 허가 면제를 전격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란 외무부가 이날 성명에서 호르무즈 해협 내 자국 통제권 침해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을 거론하며 "휴전 협정의 핵심 조항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선언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끝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전면전 재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다만 이번 발언이 협상용 엄포라는 시각도 있다. 판이 틀어질 때마다 테이블을 걷어차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상대가 양보안을 들고나오면 극적으로 복귀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행보에 비춰, 일종의 압박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미국이 다시 전면전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2월 말 이란 공격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글로벌 유가 폭등, 지지율 하락이라는 치명적인 부메랑을 경험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처지에서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해 선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정치적 부담이다. 장기간의 경제 제재로 이미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이란 역시 미국과의 전면전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는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