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빚·AI 독주"…ECB 포럼 글로벌 수장들의 경고와 고백 [ 글로벌 IB리포트 ]

입력 2026-07-02 08:46




지금 포르투갈 신트라에서는 전 세계 자본시장의 운전대를 쥔 중앙은행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정제되지 않은 진단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지금 바로 들어가 보시죠.



가장 먼저 글로벌 통화정책의 사령탑인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입에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워시 의장이 현재 추진 중인 이른바 '연준 대개조' 프로젝트의 핵심 퍼즐이 이번 포럼을 통해 마침내 베일을 벗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칼을 갈고 있는 분야는 바로 '데이터를 보는 눈'입니다. 사실 워시 의장은 과거부터 정부 기관들이 제공하는 딱딱하고 낡은 통계 도구들에 대해 깊은 불신을 드러내 온 인물로 유명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워시 의장은 "앞으로 9개월에서 12개월 안에 최첨단 신기술을 전격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후행성 지표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실물 경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실시간 라이브'로 동시 모니터링하며 한층 더 기민하고 정확한 정책 결정을 내리겠다는 구상입니다.



동시에 워시 의장은 백악관을 향해서도 화끈한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를 당장 인하하라"며 연일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는 상황인데요. 워시 의장은 "연준은 아주 오랜 기간 독립성을 지켜왔으며, 아무리 압박해도 내 갈 길을 가겠다"고 정면으로 받아치며 철저한 독립성 수호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이번 포럼은 워시 의장이 최근 자본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AI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요즘 주식 시장을 보면 "AI가 공급 측면의 생산성을 높여서 결국 인플레이션도 잡아줄 것"이라는 장 장밋빛 전망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워시 의장은 "연준 위원들 역시 AI가 물가를 낮춰줄 가능성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은 여전히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시장의 과열된 기대감에 확실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워시 의장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AI 붐은 기업들의 자본지출이 집중되면서 돈이 막 풀리는 '수요 폭발' 단계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이 기술이 진짜 결과물로 이어지는 '공급 확대' 단계가 되어야 비로소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텐데, 그 타이밍이 언제 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진단입니다. 이때 패널 토론의 진행을 맡은 CNBC의 세라 아이즌 앵커가 "그래서 결론적으로 AI가 물가를 올립니까, 내립니까?" 하고 돌직구 질문을 던졌으나, 워시 의장은 씩 웃으며 확답을 피하는 노련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워시 의장이 AI 투자의 긍정적인 면을 완전히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지금의 AI 투자가 아주 '건강한 현상'이라는 점은 명확히 인정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본연의 기술 개발은 등한시한 채, 장부상 수치만 만지는 '재무적 기교'나 자사주 매입으로 겉포장만 번지르르하게 다듬었다면, 지금은 미래 잠재력을 보고 진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인터뷰 도중 가장 민감한 질문인 "그래서 이번 달 FOMC에서 금리 조정을 단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역시나 철통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워시 의장은 "4주 뒤 연준 위원들과 방에 들어가 문을 꽉 닫고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친 후에 결정하겠다"며 연준 특유의 신비주의 기조를 고수했습니다.



워시 의장이 미국의 내부 개혁과 인플레이션 통제에 집중했다면, 바다 건너 영국의 사령탑은 시장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체계적 위험을 폭로하며 객석의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요즘 글로벌 증시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우셨을 텐데요.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자본시장 곳곳에 도사린 위험 요인, 즉 '시한폭탄'들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베일리 총재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현재 금융 시장 전반에 가득 찬 '빚', 즉 '레버리지'의 급격한 팽창입니다. 돈을 빌려서 자산을 매입하는 규모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입니다. 안전 자산의 대명사여야 할 정부 국채 시장은 물론이고, 최근 몇 달 동안 주식 시장 내에서도 헤지펀드들이 차입을 일으켜 베팅하는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심지어 대중적인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이러한 레버리지 투자가 급증하며 시장의 체질을 바꾸고 있으며, 여기에 제도권 은행의 규제를 벗어나 급성장한 '사모신용' 시장까지 몸집을 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베일리 총재는 "이러한 취약성 속에서 만약 어디 한 군데라도 고리가 터진다면, 시장 전체로 도미노처럼 위기가 번지는 광범위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적은 통상 금리 변동성이 커지면 자산 시장도 숨 고르기에 들어가야 정상인데, 최근에는 금리 향방과 상관없이 주식 시장이 독주하는 '대형 괴리(Divergence)'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일리 총재는 "이 묘한 동조화 깨짐 현상의 중심에는 결국 첨단 AI가 자리 잡고 있다"고 콕 짚었습니다. 이에 따라 영란은행은 현재 AI 발 자산 버블 가능성을 포함해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여러 잠재적 위험 목록을 전면 재점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AI가 가져올 유토피아적 미래에 지나치게 취해 있는 나머지, 발밑의 리스크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일침입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미국의 독주와 이에 따른 시장 과열을 바라보는 유럽의 내부 시선은 어떨까요? 포럼 도중 "요즘 AI 산업이라고 하면 전 세계가 미국 빅테크 기업들만 주목하고 있다, 유럽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으며 경쟁에서 너무 뒤처진 것 아니냐"는 뼈아픈 지적이 회의장을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이에 대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허를 찌르는 반전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우선 "유럽이 AI 투자나 선도 기업 육성 측면에서 미국보다 늦은 것은 사실"이라며 쿨하게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미국과 유럽은 사실상 서로가 서로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역학 관계"라며 묘한 비유를 던졌습니다. 기술적 혁신은 미국이 훨씬 앞서있을지 몰라도, 그 대단한 AI 기술을 가치로 치환하고 막대한 이익을 거두기 위한 '거대 소비 시장'은 결국 유럽이 쥐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초대형 빅테크 기업들,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매출 장부를 열어보면 전체 수입의 무려 4분의 1(25%)이 유럽 유저들의 지갑에서 나오고 있다는 구체적인 지표를 제시했습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개발자가 기막힌 물건을 만들어낸다 한들, 이를 사줄 거대한 소비층이 없다면 사업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은 미국의 첨단 기술 생태계가 없으면 안 되고, 미국 기업들 역시 유럽이 채워주는 매출 장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한 배를 탄 명확한 운명 공동체"라며 공생의 필요성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겉으로는 건전한 기술 경쟁을 벌이겠지만, 속으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미국 일변도의 AI 독주 체제 속에서 유럽 시장이 가진 '소비력의 권력'을 당차게 피력한 발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포르투갈 신트라 현장에서 전 세계 중앙은행 수장들이 던진 솔직하고도 매서운 통화정책 비하인드 뉴스를 짚어드렸습니다.

박지원 외신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