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에는 "실적이 잘 나오면 주가가 오른다"는 격언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논리 같지만, 그동안 마이크론(Micron)에게는 이 쉬운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무려 12분기 연속으로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적 발표 다음 날 주가가 하락한 경우가 7번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매번 뛰어난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주가가 밀리며 투자자들의 속을 태우던 마이크론이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흐름을 연출했다. 실적 발표 직후 시간 외 거래에서부터 10% 이상 급등하더니, 본 장 마감까지 그 강세 흐름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그동안 마이크론을 짓누르던 흐름이 이번엔 왜 바뀌었을까.
먼저 뉴욕 증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가의 대표적인 강세론자로 꼽히는 펀드스트랫의 톰 리 연구소장은 최근 S&P 500의 연말 목표가를 8,000달러로 파격 상향 조정했다. 톰 리 소장은 "현재 주가가 비싸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돈을 너무 잘 벌고 있기 때문에 목표가를 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밸류에이션의 인위적인 팽창이 아니라 기업들의 본질적인 이익 체력 자체가 좋아졌다는 진단이다. 구체적으로는 2027년 EPS(주당순이익) 전망치가 크게 상향되면서 목표가를 높일 명분이 명확해졌다는 분석이다. 현재 미국 기업 중 이익 측면에서 가장 강렬한 주목을 받는 곳이 바로 하루 만에 15% 폭등한 마이크론이다. 미 금융 매체 배런스는 기사 제목을 아예 "마이크론, 새로운 엔비디아(Micron, The New Nvidia)"라고 달며 지금의 위상을 압축해 표현했다.
이번 실적 발표 이후 주가 향방이 과거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이유는 '16건의 대규모 장기 계약'에 있다. 과거 마이크론이 호실적을 내고도 주가가 밀렸던 배경에는 "이 좋은 실적이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피크아웃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16건의 장기 공급 계약이 이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향후 공급 과잉이 도래하거나 수요가 잠시 흔들리더라도,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이미 확정된 물량이 계약서에 모두 명시되어 있어 실적 안정성을 완벽하게 보장받게 된 셈이다.
마이크론의 실적과 계약 세부 내용을 확인한 월가 투자은행(IB)들은 일제히 목표주가를 끌어올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해 왔던 골드만삭스의 태도 변화가 눈에 띈다. 골드만삭스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격 상승세가 장기 계약을 통해 얼마나 고정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며 가장 낮은 수준인 900달러의 목표가를 제시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16건의 장기 공급 계약을 확인하자마자 즉각 스탠스를 전환했다. 골드만삭스는 목표주가를 1,100달러로 상향 조정하며, 이번 장기 계약이 마이크론의 밸류에이션 멀티플을 한 단계 높이는 강력한 신호라는 점에 동의했다. 시장에서 가장 신중했던 하우스마저 태도를 바꿨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투자은행들의 전망은 더욱 공격적이다. 바클레이즈는 마이크론의 목표주가를 2,000달러로 아예 두 배 가까이 폭등시켰다. 바클레이즈는 "16개 고객사의 의무 인수 계약 세부 내용이 시장의 기대를 훌륭하게 뛰어넘었다"며, 현재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국면이기 때문에 주가는 더 위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UBS 역시 투자의견 '매수'와 함께 목표주가 1,625달러를 제시했다. UBS는 마이크론이 앞으로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이 같은 장기 계약으로 채울 계획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계약서에 명시된 가격 하한선이 매우 탄탄하다고 짚었다. 반도체 업계의 구조적 특성상 웬만한 공급 과잉이 오지 않는 한 고객사들이 이 계약을 파기하기는 어려우며, 그 시점 또한 빨라야 2029년이나 2030년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접근해도 좋다는 평가다.
도이치방크는 목표주가를 1,550달러로 상향하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본질적인 위상 변화를 언급했다. 도이치방크는 "메모리가 과거의 단순한 원자재(Commodity)에서 이제는 '전략적 자산'으로 구조적 변화를 이뤄냈다"고 표현했다. 메모리 반도체가 단순히 수급에 따라 가격이 널뛰는 범용 상품이 아니라, AI 인프라 구축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전략 자원으로 격이 한 단계 격상되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화려한 랠리 뒤편에 존재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간과할 수 없다. AI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와 달리, 빅테크 기업들의 내부에서는 소리 없는 '현금 고갈 비상벨'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빅테크 주가는 조정을 받고 마이크론은 독주하는 디커플링 현상이 명확하게 관측되었다.
자금 흐름 그래프를 보면 2012년부터 2024년까지 빅테크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FCF)은 우상향을 그리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왔다. 그러나 2025년을 기점으로 2026년 현재 이들의 잉여현금흐름 총합은 바닥을 향해 수직 낙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빅테크 기업들이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다.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AI 데이터센터 건설, 전력 인프라 확충, 그리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의 최첨단 칩을 구매하는 데 그야말로 전력 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칩을 파는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당장 더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자금을 집행하는 빅테크의 현금 여력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구조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표는 S&P 500 지수의 움직임이다. 과거에는 빅테크의 현금흐름과 S&P 500 지수가 거의 동행하며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빅테크의 현금이 바닥을 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P 500 지수는 오히려 사상 최고치를 향해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이례적인 괴리가 앞으로 자산 가격의 조정을 통해 정상적으로 좁혀질 것인지, 아니면 AI 시대가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가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이 마주한 가장 거대한 질문이다.
박지원 외신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