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던 한 중견기업이 평범한 직장인들의 '대담한 선택'으로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상장사 최초로 종업원지주제(EBO, Employee Buy-Out)를 도입해 홀로서기에 성공한 건설 엔지니어링 전문기업 '한국종합기술'의 이야기다.
김영수 KECC 한국종합기술홀딩스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TV '박정윤의 파워인터뷰'에 출연해 외부 사모펀드나 대기업의 손에 넘어가는 대신 직원이 직접 회사를 인수해 매출 4,000억 원대 기업으로 성장시키기까지의 9년간의 여정을 밝혔다.
"우리가 돈 모아 회사 삽시다"…530억 원으로 일궈낸 기적
1963년 공기업으로 출범해 1994년 민영화(한진중공업 인수)를 거친 한국종합기술은 2017년 또 한 번 매각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모기업의 경영 위기 때문이었다. 당시 5년 차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김영수 대표는 "M&A 이후 기업이 망가지거나 실패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며 "우리 회사가 너무 좋은 회사니 우리가 돈을 내서 직접 사자고 제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인수를 시도했으나 법적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임직원들은 'KECC 엔지니어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이 협동조합이 지분 100%를 가지는 지주회사 '한국종합기술홀딩스'를 만드는 우회로를 택했다. 현재 홀딩스는 한국종합기술의 지분 약 52%를 보유한 대주주다.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됐다. 특정 임직원이 지분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1인당 출자액을 5,000만 원 이하로 제한했다. 임직원 약 830명이 십시일반으로 385억 원을 모았고, 부족한 금액은 증권사 주식담보대출(145억 원)을 받아 총 530억 원 규모의 인수를 완료했다. 현재 협동조합에 참여 중인 임직원은 1,100명에 달한다.
배가 산으로 간다? 소유와 경영 분리…경영진 선출은 '1인 1표 투표'로
"주인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세간의 우려를 한국종합기술은 철저한 '거버넌스(지배구조)' 확립으로 정면 돌파했다. 핵심은 '소유와 경영의 명확한 분리'다.
한국종합기술의 경영진 선출 방식은 마치 '대한민국의 축소판'과 같다. 5,000만 원을 출자한 임직원에게는 직급과 상관없이 똑같이 '1인 1표'의 주권이 부여된다. 경영진은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고 공개 모집하며, 후보자들은 임직원들 앞에서 공약 발표와 치열한 토론회를 거쳐야 한다. 최종적으로 조합원들의 민주적 투표를 통해 경영자가 선출되며, 선출된 경영자에게는 전권을 위임한다.
직원이 주인이 되면서 사내 투명성은 되레 극대화됐다. 김 대표는 "주인이 된 이후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 건수가 훨씬 늘었다"며 "예전에는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회사의 가치나 불법적인 요소에 대해 직원들이 직접 감시하기 때문에 투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한, 독점적 대주주가 없다 보니 사외이사가 독립적으로 리스크를 체크하는 실질적인 이사회가 운영되고 있다.
적자 나자 '상여금 100% 반납' 결의…위기 넘기니 매출·고용 '고공행진'
종업원지주제의 진가는 위기 상황에서 발휘됐다. 인수 초기 한국종합기술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직원들이 경영하면 망한다"는 외부의 차가운 시선에 직면했다.
2019년, 직원들은 당장의 이익 대신 회사의 생존을 선택했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엔지니어링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임직원 투표를 통해 역대 최초로 상여금 100% 반납을 결의한 것이다. 노조가 임금 인상이 아닌 자발적 반납을 주도해 통과시킨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김 대표는 "많이 벌면 많이 가져가지만 적게 벌 때는 고통도 분담한다는 주인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그때 '이 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위기를 극복한 회사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인천공항, 가덕도신공항, 고속도로 등 공공 발주(SOC)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민간 영역과 신재생 에너지 영역으로 사업을 대폭 확장했다. 그 결과 2017년 인수 당시 2,000억 원대였던 매출은 2025년 기준 약 4,000억 원 규모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고용 창출 효과도 상당하다. 인수 당시 1,100명이던 임직원 수는 현재 1,900명을 돌파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9년…정부 지원과 신탁 제도 도입 필요"
올해로 종업원지주제 도입 9년 차를 맞이한 한국종합기술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8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는 등 모범적인 경영 모델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최근 중소기업들이 승계 문제로 문을 닫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영국의 신탁 제도처럼 직원이 기업을 승계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법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면 국가적으로 건강한 종업원지주사들이 더 많이 태어날 것"이라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주주들을 향해 "직원들이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 하는 만큼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어 절대 망하지 않을 안정적인 기업"이라며 "과거 주당 100원이던 배당금을 올해 150원으로 인상하는 등 앞으로도 경영 실적에 맞춰 주주 환원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