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2026년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마련하며 총파업 위기는 넘겼지만,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구조가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설비투자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성과급이 사실상 고정비처럼 자리 잡을 경우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쟁사들이 공격적으로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수십조원 규모의 현금을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에서 삼성·SK를 추격하는 마이크론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기존 200억달러에서 250억달러(약 38조원)로 확대했다. 올해 1월 착공한 미국 뉴욕주 클레이 메가팹 건설에 향후 20년간 최대 1천억달러(약 152조원)를 투입하는 등 미국과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생산시설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도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최대 560억달러(약 85조원) 수준까지 높였다. 최근 3년 누적 투자액(1천억달러)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대만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까지 생산거점을 넓히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직원들에게 약 4조7천억원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영업이익이 250조원 안팎에 달할 경우 내년 초 지급될 성과급이 약 25조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27년 예상 영업이익으로는 400조원 전망도 거론된다.
이 경우 SK하이닉스가 2년 동안 지급해야 할 성과급 규모는 65조원 수준에 달한다. 반도체 팹 1개를 짓는데 약 20조원이 드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팹 3개 이상을 구축할 수 있는 규모다.
반도체 업계는 경기 변동성이 큰 산업 특성상 호황기에 충분한 현금을 확보해야 불황기 치킨게임을 버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인 초대형 투자가 필요한 만큼 자본 운용의 유연성이 핵심 경쟁력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논란은 성과급 결정 권한과 관련한 법적 쟁점으로도 번지고 있다. 주주단체인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삼성전자의 특별성과급 지급은 주주 권한에 해당한다며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상, 이 같은 형태의 성과 보수는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임금 등 근로조건'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성과급 기준을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과거에는 EVA라는 경제적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해왔으나, 산출 방식과 요소를 회사에서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논란이 이어졌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논평을 통해 "경영진, 이사회, 임직원,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이해하고 측정할 수 있는 간단한 성과 평가 및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따르면, 애플의 임원평가 및 보상은 ▲ 상대 총주주수익률 ▲ 매출액 증가율 ▲ 영업이익 증가율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엔비디아 역시 ▲ 3년 상대 총주주수익률 ▲ 매출액 증가율 ▲ 영업이익 증가율 지표 등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