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중동 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에 미 장기 국채금리가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채권 시장의 매도가 확산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이던 미 뉴욕 증시도 하락을 이어갔다.
19일(현지시간)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약 6bp(1bp=0.01%포인트) 오른 연 5.18%로 심리적 저항선인 5% 선을 돌파했다. 30년 만기 국채금리가 이와 같은 수준을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전세계 주요 자산 가격의 표준이 되는 10년물 미 국채 금리도 4.66%로 작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미 연방준비제도(Fed) 기준금리 민감도가 큰 2년물 금리도 4.10%로 동반 상승했다. 지난주 미 노동부가 공개한 미국 소비자물가 지수와 생산자물가 지수가 각각 인플레이션 재가속을 나타내면서 채권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 기간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통제로 인해 서부텍사스산 원유와 북해산 브렌트유 모두 배럴당 100달러선을 여전히 상회하고 있다. 전날 뱅크오브아메리카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국제유가는 올해 남은 기간 브렌트유 기준 90달러 아래로 내려가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미 연방준비제도의 다음 행보가 보다 통화 긴축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연내 세 차례 인하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전쟁 장기화로 인해 분위기가 뒤집혔다.
시카고상품거래소그룹(CME)에서 선물시장을 바탕으로 금리 전망을 제공하는 페드워치(FedWatch)는 올해 12월초 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이 42%라고 밝혔다. 16.4%의 시장 참가자들은 50bp의 금리 인상까지 반영하기 시작했고, 금리 동결 기대치는 38.3%로 낮아졌다.
또한 내년 1회 금리 인상을 반영하던 시장은 내년 2분기 이후 연 4.5% 이상의 금리 수준이 될 가능성도 10%대로 높여 잡고 있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는 “이른바 채권자경단이 연준에 인플레이션 대응에 뒤처져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오는 7월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클레이즈의 아제이 라자디약샤 글로벌 리서치 총괄도 이에 대해 “미 정부 부채는 성장보다 빠르게 늘고 인플레이션은 악화되고 있는 반면, 재정 개혁을 추진할 정치적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서 "장기 국채에 손을 뻗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장기 국채금리 연 5%선은 한때 일부 투자자에게 저항선으로 여겨져왔지만, 이러한 심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달들어 심화한 채권시장의 경고음은 최근 한 달간 급격히 오른 반도체 종목을 중심으로 급격한 조정을 만들고 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이날 강보합에 그쳤지만, 최근 사흘간 7% 가량의 낙폭을 회복하진 못했다.
앞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마이클 하트넷 수석투자전략가는 지난 금요일 보고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200일 이동평균선을 62% 웃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트넷 전략가는 이러한 수치는 닷컴 버블 당시 이격도인 55%를 넘어선 것으로 시장 과열이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이와 별개로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펀드매니저 설문에서도 주요 기관 투자자 가운데 응답자 62%가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차입이 잠재적인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의 하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루 뒤인 20일 장 마감 후 나오는 엔비디아 회계연도 1분기 실적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HSBC는 이날 1분기 매출이 회사 가이던스인 780억 달러와 시장 전망치 평균인 786억 달러를 모두 웃도는 811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종전 295달러에서 32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엔비디아는 -0.77% 하락한 220.61달러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대형 기술 기업 가운데 구글이 -2.34% 밀렸고, 아마존(-2.08%), 마이크로소프트(-1.45%), 메타(-1.41%), 테슬라(-1.43%) 등 애플을 제외한 매그니피센트7 기업의 하락이 두드러졌다.
반도체 기업 가운데 마이크론 2.52%, 인텔 2.43%, 샌디스크가 3.77% 각각 반등했으나, 브로드컴(-2.29%), AMD(-1.65%), 퀄컴(-3.94%) 등 전반적 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